KBS 다큐인사이트 - 인생정원 / 매화숲 (故 박정열ㆍ배덕임 부부) - 경남 진주
봄이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붉게 피어나는 강인한 소성의 매화.
매화는 혹독한 시절에도, 늙고 병든 와중에도 결코 꽃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굳센 의지와 고결한 자태에 매료돼 생을 바쳐 매화 숲을 일군 사내가 있다.
힘겨운 투병을 하면서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꽃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내.
겨울 가면 봄이 오고, 꽃들의 시절이 돌아옴을 매화 숲의 세 계절과 한 사내의
마지막 인생 여정을 통해 뜨겁고 찬란하게 담아냈다.
이름 없는 매화 숲에 붉은 매화 피고 지네. 정식 명칭도 없고, 입장료도 없다.
그저 ‘진주 매화 숲’이다. 경상남도 진주시에는 축구장 7개 크기의 매화 숲이 있다.
그 숲에는 ‘잘 익은 와인처럼 붉은’ 홍매를 비롯해 ‘어사화를 닮은’ 수양매, ‘구름을
나는 용의 형태를 띤’ 운룡매, 청매 등 50여 종의 매화가 피고 지며 제일 먼저 봄을
알린다.
한 인간의 순수한 열정이 빚어낸 결실인 매화 숲을 조성하는 데 꼬박 14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일에 일생을 걸었다. 박정열(69세), 배덕임(66세) 씨 부부의
이야기다. 남편 박정열 씨는 조경가였고, 아내 배덕임 씨는 야생화 가게를 운영
했었다. 그렇게 평생 번 돈을 모두 털어 부부는 숲을 위해 썼다. 시작은 진주에
혁신도시가 조성되면서부터다. 당시 숱하게 베어지고 버려지던 매화나무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 30여 그루의 매화나무를 모셔왔고, 이후 전국 각지에서
구해 온 희귀 수종의 매화를 심고, 일 년 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관리한 끝에
마침내 매화 숲을 일궈냈다. 10여 년의 맹목적인 헌신. 이유를 물었더니, “남들이
꽃 보고 즐거워하는 게 나의 즐거움”이란다. 한 인간의 순수한 열정으로 탄생한
위대한 결실이, 바로 진주 매화 숲이다.
꽃을 포기하지 않는 매화처럼, 그리고 당신처럼 죽음 같은 겨울을 이겨내고,
기어이 생명을 틔우는 강인한 소성의 매화. 박정열 씨는 그게 좋았다. 하지만,
지난해 봄 난치성 질환인 비결핵 항산균 폐질환을 진단받은 정열 씨는, 그토록
기다리던 새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2021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홍매 한 그루가
서둘러 꽃을 틔운 어느 겨울날이었다. 그의 죽음은 쓸쓸했지만 마냥 애통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가족과 세상에 매화라는 향기로운 선물을 남겼고, 혹독한 시간이
지나면 꽃들의 계절이 돌아온다는 인생의 진리를 알려주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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