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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아내와 나 사이 (이생진)

clara40 2023. 3. 27. 19:01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이생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