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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마리아 수녀회

clara40 2016. 5. 23. 18:54


                         마리아 수녀회 


      

일전에 [책-알로이시오 신부]란에 소개했던 알로이시오 신부.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따스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지속적으로
돌보도록 1964년 8월 15일 '마리아수녀회'를 창설했다. 올해가 바로
마리아수녀회 창설 50주년이 되는 해로, 그의 정신이 '마리아수녀회'를
통해 반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실현되어 온 것이다.       
* KBS 1 TV 성탄 특집<천상의 엄마>12.24 오후 10시 방영됨.       
                              마리아 수녀회       
  부산시 암남동에 자리한 마리아수녀회. 그곳에는 수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80여명의 수녀들이 있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붙여진 이름은 ‘수도자’가 아니라
‘엄마’다. 그녀들이 키우는 600명의 아이들 때문이다.       
  생후 1개월이 된 아기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18살 아이까지…그 아이들은
수녀들을 ‘엄마’라 부른다. 80명의 수녀들과 600명의 아이들이 만들어 가는 울고
웃는 일상. 유치부 수녀들은 회색 수도복을 휘날리며 틈만 나면 아이들과 뛰어
논다.       
  수녀 한명과 보육사 한명이 돌보는 아이들은 평균 10명. 그러다보니 씻기고
입히고 먹이느라 하루 종일 쉴 틈이 없다. 아이들은 이런 수녀를 ‘엄마’라고
부른다. 엄마 수녀도 자신들이 불리는 호칭 ‘엄마’를 사랑한다.       
  보통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은 좀 달라진다. 방 좀 치우
라고 야단을 쳤더니 퉁명스러운 대꾸를 하는가 하면, 창틀 위에 올라앉는 위험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사춘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과 방황이 시작되는 나이, 수녀원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의 방황은 깊다. 그 결핍과 허기를 채워주는 것도 온전히 수녀님의 몫.
마리아 수녀회 역사 50년 동안 그렇게 수녀들의 품에서 자라 사회로 나간 아이들이
12,000명이 넘는다.        
  그 고생스러운 삶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한국 전쟁 직후, 전쟁 고아를 돌보기
위해 설립된 마리아 수녀회는 일하는 수도회, 고생하는 수도회로 알려져 있다.
수녀들은 아이를 기르기 위해 마리아수녀회를 선택했다.       
  수녀가 되겠다고 집 떠난 딸이 아이들 빨래감에 묻혀 사는 모습을 본 부모님이
집에 가자고 손을 잡아 끌기도 했다. 아기를 업고 안고 다니니 수도자 망신을 시킨
다고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그녀들은 말한다. ‘가장 가난한 아이들이 일등
예수님입니다’       
  수녀들의 그 길에는 선교 사제였던 알로이시오 신부가 함께 있었다. 어릴 적
부터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제가 되기를 꿈꾸었던 알로이시오 신부. 미국의 풍요
로운 사제 생활에 염증을 느꼈던 그는 한국을 선교지로 선택했다.
  그는 거리를 헤매는 전쟁 고아를 돌보기 위해 '마리아 수녀회'를 창설하고, 
스스로 가장 가난한 이들의 친구로 살며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수녀들은 소유와 처분에 있어서 가장 가난한 생활을 한다. 반드시 필요한 것
만을 요청하고, 허락된 것만을 사용하는 생활. 나일론으로 지은 수도복은 때가
타지 않는 회색이다. 모든 색의 바탕이며, 한없이 겸손한 회색의 수도복은 수녀
들의 삶을 닮았다.       
  수녀들의 품에서 자란 아이들은 18세가 되면, 수녀원을 떠나 독립해야 한다.
험한 세상으로 나가 온전히 혼자만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 그들의 삶을
돕기 위해 수녀들은 한 달에 한번 반찬을 만들어 보내 주고, 간절한 기도로
사랑을 전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졸업생들은 가슴으로 깨닫는다. ‘나는 불쌍한
고아가 아니고, 좋은 교육을 받고 훌륭한 어머니를 둔 아들이다’       

[출처] PD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