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 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난한 사랑 노래>(1988)-
신경림 시인이 이 시를 쓰게 된사연 :
“내가 길음동 산 동네에 살 때 집 근처에 자주 들르던 술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 가난한 젊은이를 알게 됐어. 그는 열정을
지닌 청년이었는데, 많이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처지를 못내
부끄러워하는 순박한 젊은이였었지.
어느 날 그 청년이 고민을 얘기하는데, 바로 이 단골 술집 딸과
사랑하는 사이인데, 자신이 너무 가난해 결혼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지. 그 얘기를 듣고 청년에게 모든 어려움을 극복
하고 둘이 결혼을 하면, 주례도 해주고 결혼 축시도 써주겠노라고
약속을 했어.
그 희망에 힘을 얻었는지 둘은 머지않아 결혼식을 올렸어. 당시
결혼식장에서 그들을 위해 읽어준 축시가 있는데, 그 시가 바로
<너희 사랑>이야. 그들의 결혼식은 어느 비좁고 허름한 지하실에서
이뤄졌지. 청년이 노동 운동으로 지명 수배를 받아 쫓기는 신세였거든.
그날 결혼식이 끝나자 마자 곧장 집으로 돌아와서 두 사람이 겪은
고생과 인생의 쓰라림을 달래는 마음으로 시 한 편을 더 쓰게 되었는데,
그 시가 바로<가난한 사랑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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