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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한가위, 영혼이 행복해야 할 축제 (권지혜)

clara40 2017. 10. 14. 11:05


  한가위, 영혼이 행복해야 할 축제

          (권지혜 / 소설가)


               


나는 죽어서 자손들이 영혼 없는 표정으로
나를 찾아와 성묘하고,
분노에 찬 손끝으로 만든,
또는 무성의하게 주문한
제사 음식을 먹고 싶지 않다.

다만 꼭 길 막히는 추석 날이 아니라도
그 언저리의 어느 좋은 가을날,
내 자식들이 편한 날을 맞아
분위기 좋고 맛난 식당에서 만나,
하루라도 나를 기억하며 그리워 하면 좋겠다.

묘를 쓰고 싶지 않지만,
나를 추모하는 공간이 있다면,
향기로운 차나 커피 한잔으로
간단히 다례(茶禮)를 지내는 것으로도
내 영혼은 만족할 것이다.

대가 바뀌어 자손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가 하늘에서
그들을 보살피는 걸 기쁨으로 삼겠다.

제삿 밥에 관심 없는 나의 생각이다.

'낀 세대'인 우리 세대야말로
젊은 세대에게 이런 유언을

세상 떠날 때 남겨야 하지 않을까.

시대가 변하고 세대와 세태가 바뀌면,
전통과 관습도 바뀌는 게 당연할테다.

차라리 살아 계시는 양가 부모님께
그 봉사와 노력이면,
얼마나 가상한 효도가 될 것인가.

(2017년 10월 2일 조선일보 '인문의 향연'에서 옮김)


[출처] 경기여고 46회 카페 / 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