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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Medicalization

clara40 2018. 5. 5. 10:13

       

                             Medicalization


    


      요즘 사회학 용어로 떠오른 '메디컬라이제이션(medicalization)'에

    대하여 말씀 드린다.
      올해 75세로 노년기에 들어와 있는 한 친구가 있다. 3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고, 60세 은퇴 후 몇 년간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남아 있었다.
    건강에 여전히 자신있어 했고, 어지간한 몸의 불편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동창 뿐 아니라 직장 생활 등으로 맺어진 인맥도 살아 있었고,

    이런저런 모임도 심심찮게 있어서 나름대로 활기있는 노후 생활을

    즐겼다.
      그러다 70대로 들어서자 건강 문제가 조금씩 나타나면서, 그의 생활도

    달라져 갔다. 쾌활과 낙천은 슬금슬금 도망가고, 부정과 불안이 반쯤 

    망가진 팔랑개비 처럼 마음 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증상이

    생길 때마다 이 병원 저 병원 순례가 시작됐다.
      배가 이유 없이 더부룩 하다. 생 배앓이가 잦다. 이쪽 관절이 쑤신다.

    저쪽은 뻣뻣하다. 어깨가 시리다. 눈이 자주 흐릿해 지고, 왠 거미줄이

    어른거린다, 가는 귀가 먹는 것 같더니만, 조수미 노래같은 고음이 짜증

    나게 들린다, 소변이 어쩌구 저쩌구~ 등등 다양한 호소를 쏟아냈다.
      특별한 이상은 잡히지 않고, 검사만 자꾸 늘어나자, 평생 병원 신세

    안 질 것 같던 자신감은 사라져 가고, 사소한 신체 문제도 죄다 질병

    으로 여기며 '병원 의존형' 사람이 됐다.
      이를 새로운 사회학 용어로 '메디컬리제이션(medicalization)'이라고

    일컫는다. "모든 증상을 치료 대상이라 생각하며, 환자로 살아가는 것"

    이다. 노령화 진입 초기에 흔히 볼 수 있는 심리적 현상이고, 고령화

    시대에 일반화된 사회적 현상이다. 노화의 징후로 어차피 나타나는

    다음의 증상들은 대개 병이 아니다.
      나이 들면 호흡에 쓰는 근육과 횡격막이 약해진다. 허파꽈리(肺胞)와

    폐 안의 모세 혈관도 줄어간다. 가만히 있어도 예전 보다 산소가 적게

    흡수되어 평소보다 움직임이 조금만 더 커지거나 빨라지면 숨이 차다.

    이건 질병이 아니다. 체내 산소량에 적응하면서 운동량을 조금씩만 

    늘려가도 숨찬 증세는 개선된다. 

      같은 이유로 기침도 약해진다. 미세 먼지 많은 날 기침이 자주 나온

    다는 호소는 되레 청신호다. 기침은 폐에 들어온 세균이나 이물질을

    밖으로 튕겨 내보내는 청소 효과가 있는데, 그런 날 기침이 있다는 것은

    호흡 근육이 제대로 살아 있다는 의미이다. 만성적 기침이 아니라면

    병원을 찾을 이유가 없다.
       고령에 위장은 움직임이 더디고, 오래된 속옷 고무줄 처럼 탄성도

    줄어서 음식이 조금만 많이 들어와도 금세 부대낀다. 담즙 생산이 줄어

    십이지장은 일감을 처리할 연료가 모자란 셈이니, 기름진 고기의 소화가

    어렵다.
      젖당 분해 효소도 덜 생산돼 과한 유제품 섭취는 설사로 바로 이어진다.
    * 옛적에는 주인이 배 아프면 머슴이 설사 했다지만, 요즘에는 배 아픈

    자가 직접 해야 한다.*
      대장은 느릿하게 굼떠져서 식이섬유 섭취라도 줄면 변비가 오기 쉽고,

    막걸리라도 좀 마셨다하면 어김없이 아랫 배가 사촌 논 살 때 마냥 슬슬

    아파온다. 이런 불편들은 고령 친화적 생활 습관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예를들어 위가 더부룩 하면, 연한 음식과 小食으로 습관을 바꿔가면 된다.

      또한 고령의 상실감이나 서운함이 밀려올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증상

    들은 마음 먹기에 따라 병이 되기도 하고 아니 되기도 한다. 따라서 사고

    전환이 권장되지 치료가 꼭 필요한 게 아니다.
      가령 楊貴妃가 옆에 붙어 있는데도 한창때 같았으면 천방지축으로 기고

    만장했을 '똘똘이'가 기침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면, '아! 자손을 번식시킬

    의무가 끝났구나' 라고 수긍하면 병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끝난 의무를

    치료 대상으로 여겨서 의사나 약 등에 의존하여 억지로 더 질질 끌게되면,

    병과 다를 것이 없게 된다. 

    *서운하겠지만 '똘똘이'가 자기 몸에서 가장 똘똘했던 시절은 벌써 지나갔다.*
      다른 한편으로, 노화 현상을 모르거나 간과하면, 노년의 건강에 유해로울 수

    있다. 나이 들면 음식을 삼킬 때마다 인후가 氣道 뚜껑을 닫는 조화로움이

    둔해진다. 노인들이 자주 사레 들리는 이유다.
      노년의 골 감소증은 어느 정도는 숙명인데, 목뼈에 골다공증이 오면 자기도

    모르게 머리가 앞으로 쉽게 숙여진다. 이는 氣道를 덮는 인후를 압박한다.

    아무 생각 없이 한입에 쏙 들어 가는 기름 바른 인절미나 조랑떡이 입에 당겨

    少時적 처럼 한 입에 냉큼 삼켰다간 氣道가 막혀 사달이 날 수도 있다.
      불필요한 약 복용이나 무심코 건네받은 건강 보조 약물이 몸을 그르칠 수도

    있다. 노령에는 肝 세포 수가 감소되고, 간으로 흐르는 피도 줄어들 뿐더러

    간 효소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그 결과 약물 대사(代謝)가 늦어지고, 체내

    잔존량이 늘어나 약의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얼마 전부터 생명 공학이나 의학의 연구 영역과는 별도로 사회학자들이

    고령화 시대의 사회 문제로써 이런 현상들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위에 열거된 노령화 패턴등을 이해한다면 "medicalization", 즉 '증상이

    있으니 나는 환자이고 따라서 약을 먹어야지' 랄지 또는 '몸이 한창 때 하고

    많이 달라, 약을 처방 받아야 해' 라는 생각을 상당히 떨쳐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여러 증상에 적절히 순응하면서 다스려 가거나, 하다못해

    무거워진 몸을 자주 움직여 주기만 해도 마음까지 한결 가뿐해 질 수 있다.

    '늙어 가는 것'과 '아픈 것'은 비슷해다른 것이다.

      뻔한 얘기가 생소하게 들린다면, 우리 회원님들 처럼 난생 처음 늙어 보아서

    신체 노화를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이고, 노화와 질병을 구별하여 배울 기회나

    필요가 없었던 까닭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가 나이인 만큼 지병(持病) 한 두개쯤 있다면, 섭리로 수용하고

    'Escape from  medicalization!' (medicalization으로부터 벗어나) 가물

    가물 해진 生氣도 다시 북돋우고 숨어버린 樂을 찾아내 '내 나이가 어때서~'

    라고 정도껏 즐겨도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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