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an Turing - Computer의 아버지 - Alan Turing (1912-1954) 이브의 사과ㆍ뉴턴의 사과ㆍ세잔의 사과! 프랑스의 미술 평론가 모리스 드니는 세 개의 사과가 인류를 움직였다고 주장했다. ‘이브의 사과’는 역사가 아니라 성경의 내용이므로, 역사적 인물 가운데 사과와 관련한 위인 세 명을 고른다면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나 독 사과를 먹고 자살한 컴퓨터의 발명가 앨런 튜링을 넣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로고로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를 선택한 것이 튜링을 기리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1954년 오늘은 그 천재 튜링이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베어 먹고 세상을 떠난 날이다. 튜링은 한 동안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소개된 ‘에니악’보다 2년 3개월 앞선 세계 첫 컴퓨터 ‘콜로서스’를 개발한 과학자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암호 시스템 ‘에니그마'(Enigma - 수수께끼)를 해독하기 위해 자신의 수학 이론에 따라 컴퓨터를 만들었다. 영국은 전 후 이 사실을 일급 비밀로 분류해서 숨겼다. 1975년 독일의 암호를 해독해서 전술에 이용한 ‘울트라 작전’과 콜로서스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튜링도 컴퓨터 이론가에서 ‘컴퓨터의 아버지’로 격상됐다. 튜링은 공립학교인 셰르본느 스쿨 출신인데, 당시 교장은 “어떤 학교나 공동체에서 문제가 될 위험이 있는, 사회성이 아주 부족한 소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튜링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수학을 통해 컴퓨터의 이론적 틀을 마련했다. 폰 노이만 교수가 그의 아이디어를 높이 사서 공동 연구를 제안했지만, 전쟁에 휘말린 고국으로 되돌아가서 역사의 기념비를 세웠다. 콜로서스(아래 사진) 덕분에 연합군은 독일이 연합군 상륙지를 칼레로 예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과감히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펼친다.
세계 대전 이후 튜링은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연산 뿐 아니라 사람처럼 생각하는 컴퓨터의 개발을 꾀한다. 그러나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삶은 나락으로 빠진다. 튜링은 셰르본느 스쿨 시절 한 학년 위의 친구의 따스한 우정으로 ‘왕따’를 극복했는데, 그 친구가 18세에 갑자기 죽는 바람에 큰 상처를 받았다. 이것이 남성에 대한 그리움으로 발전했고, 동성애의 씨앗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튜링은 체포됐고, 법원은 여성 호르몬을 투여하는 ‘화학적 거세’ 형을 선고했다. 어쩔 수 없이 약물을 투여 받지만, 가슴이 커지고 발기력이 떨어지면서 우울증이 왔다. 그는 자살을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사회는 나를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순수한 여성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는 메모를 남기고 말이다. 동화 속 백설 공주처럼 독사과를 한 입 베어 먹고, 눈을 감았다. 우리가 오늘도 편히 쓰고 있는 컴퓨터에는 이런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현재 허리우드에서는 앨런 튜링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제작 중인데, 주인공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고 한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것이 무의미 하지만 튜링이 일찍 죽지 않았다면, PC의 발전이 훨씬 빨랐을 것이고, 잡스의 애플이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침, 2010년 오늘은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4’를 세상에 선보인 날이다. 천재들의 생명이 숨어있는 이 컴퓨터, 소중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PC나 스마트폰은 지적으로 도는 지성을 망치도록 사용할 수도 있다. 오늘은 컴퓨터를 사용할 때 튜링의 얼굴을 떠 올리면서, 컴퓨터를 가장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천재가 덜 억울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