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고(以古)
(대표 : 백정림)
갤러리 '이고'(以古)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읍 고기리 별장촌에 자리 잡고 있다.
별장촌 맨 꼭대기에 자리한 '이고'에 들어서면 백정림 대표가 15년간 컬렉션 한
동서양의 앤티크들이 격조 높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House Gallery'의 모범을 보여주는 갤러리 '이고'로 당신을 초대한다.
"앤티크 안에는 무한한 생명력이 있어서, 우리들의 생활과 사고 방식에 깊이
스며들어 있어요. 그런 이유로 앤티크는 때론 우리를 보다 품위 있고 폭넓은
사고의 전환에 이르게 하죠." 백정림 '갤러리 이고' 대표의 앤티크 예찬이다.
백 대표는 15년 넘게 동서양의 Antique tableware와 Home decoration을 모아
온 컬렉터다. 오랜 수집으로 컬렉션이 늘면서, 그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눌
별도의 공간을 생각하게 됐다.
한 동안은 서울 서초동 본가와 세컨드 하우스인 경기도 양평 포레스트 힐에
컬렉션을 나눠 보관했다. 그러나 2011년 포레스트 힐을 판 후 본격적으로
별장과 갤러리를 겸한 주택을 찾아 다녔다. 서울 근교에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최근 관심을 모은 판교 주택지도 돌아 봤다. 하지만 주택이 닥지닥지
붙어있는게 왠지 답답하게 느껴졌다. 마음속에 그리던, TV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등장하는 산 속 별장은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최고급 건축 자재와 인테리어 소품을 사용한 갤러리.
그러다 찾아낸 곳이 현재 갤러리다. 용인 고기리 유원지와 인접한 '이고
갤러리'는 별장촌 맨 위쪽, 해발 600m에 자리하고 있다. 아래 쪽보다 기온이
평균 섭씨 4도 이상 낮아 여름에도 시원하다.
원래 이곳은 별장촌을 지은 건설사 사장의 집으로, 대지 990㎡에 면적이
412.5㎡다. 건설사 사장의 집 답게 최 고급 건축 자재로 집을 지었다. 벽돌
사이에는 건강을 생각해 황토와 숯을 넣었고, 창호는 독일제 시스템 창호를
사용했다. 바닥재는 핀란드산 나무를 사용했고, 거실에서 2층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은 장인이 직접 짰다. 2층에는 황토 찜질방인 한실을 따로 두었고,
운치 있는 다락방은 풍광이 최고였다.
인테리어도 최고급 제품을 사용했다. 유럽 앤티크 소파에, 화장실 세면기와
변기는 세계적인 욕실 브랜드 Kohler사의 도자기 제품을 썼다. 무엇보다 백
대표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독일 명품 주방 가구 브랜드인 Martin Bulthaup의
식탁이었다. 전 주인은 탤런트 송혜교도 같은 불탑 식탁을 들여 왔다고 자랑
했다.
그는 처음 부터 이곳의 탁 트인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안동의 병산서원
처럼 자연을 끌어들인 창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집이 생각 보다 넓었지만, 창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남편이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남편도
흡족해 했다. 서초동 집에서 20분 거리라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이사 후 남편은
정원 가꾸기(gardening)에 빠져 주말에는 내내 밖에서 지낸다. 백 대표는 점심 때
말고는 얼굴 보기도 힘들다고 웃으며 말했다.
남편이 정원 가꾸기에 열중하는 동안 그는 앤티크 제품들을 정리하고 음식을
준비한다. 학원 사업으로 자산을 쌓은 백 대표는 30대 중반 부터 컬렉션에 관심을
가졌다. 처음 한국 목가구와 장신구 등을 컬렉션 하다 10여 년 전부터 Cutlery
수집을 시작했다. 유럽 커트러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주중이나 주말에 주로 손님을 초대하는데, 이런 문화를 함께 나눈다는
자체가 그에겐 큰 즐거움이다.
최근 갤러리를 오픈한 백 대표는 이름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림 컬렉터
이기도 한 그는 그간 화랑이랑 거래하면서 갤러리에 좋지 않은 인상을 받은 게
사실이다. 그런 탓에 갤러리라는 이름이 처음에는 탐탁지 않았다. 그렇다고
뮤지엄(Museum)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컬렉션을 하는 분 중에 별장을 가진 분들이 많아요. 하우스 갤러리인 셈이죠.
'이고'도 하우스 갤러리 개념이에요. 유럽 앤티크 컬렉션을 한다면, '마이센 좀
있겠지' 하고 와서 보시곤 놀라는 분들이 많아요. 최근에 컬렉션 목록을 만들다
보니, 지금까지 수집한 제품만 1만 개가 넘더라고요. 전시된 것보다 창고에
있는게 훨씬 많아요. 그림도 제법 있어서 가을쯤 좋아하는 분들 초대해서 전시
회도 가질 계획이에요."
발랄함이 있는 애프터눈 티 파티용 식탁
백 대표의 주 활동 공간인 부엌에 들어서면, 불탑 식탁과 냉장고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엌 오른 편으로는 집 밖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과 장식장,
그리고 앤티크 식탁이 있다. 장식장에는 다양한 티 포트와 찻잔 등이 잘 정돈돼
있다.
식탁에는 접시와 찻잔ㆍ물잔 등이 가지런히 세팅돼 있다. 애프터눈 티 파티용
식탁이다. 애프터눈 티 파티는 점심 식사 후 2시경 갖는다. 점심 식사 후 간단한
스낵과 차를 마시는 자리다. 백 대표의 애프터눈 티 파티용 식탁에는 유리 제품이
유독 눈에 띈다. 그는 도자기만 쓰면 너무 클래식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유리
제품을 가미하면, 조금 발랄한 느낌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유리 제품은 잘 깨지기
때문에 100년이 안 된 빈티지 제품이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테이블에 세팅된
유리 제품은 가장 최근 것이라도 50년 이상 된 제품이다.
애프너눈 티 파티에는 스낵과 샐러드를 곁들이기 때문에 메인 쟁반과 개인용이
따라 온다. 백 대표는 티파니사의 커트러리를 선호한다. 여러 커트러리 중 티파니
제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뛰어난 조형미와 명품이 갖는 아우라 때문이다. 티파니
제품은 시작 부터 백화점 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티파니 거라면 믿고 사도 된다
는게 그의 지론이다. 물론 어떤 컬렉터가 사용했는지도 따질 필요가 있다. 1000년
된 소나무라도 다 좋은 게 아니듯 앤티크도 타고 나길 잘 태어나야 하고, 고운
사람들이 써야 좋은 앤티크가 된다. 그가 소장한 티파니 제품은 대부분 1800년 대
것들이다. 미국 티파니 제품 외에 영국 커트러리도 많다. 영국은 은 제품도 특히
좋다.
격식을 갖춘 디너용 식탁
정찬용 식탁은 메인과 샐러드ㆍ수프 볼(bowl) 등 세 개의 접시를 중심으로
세팅된다. 백 대표가 선호하는 디너용 식탁의 스타일은 믹스 앤드 매치다.
식탁에 벨기에 테이블 크로스를 깔고, 그 위에 촘촘한 충무 누빔을 올린다.
그런 다음 수프와 샐러드ㆍ스테이크 순으로 음식을 서빙한다. 이후 그는
밥과 국ㆍ나물을 곁들인 한국식 진짓상을 추가로 낸다. 그런 다음 디저트와
차로 정찬을 마무리한다.
"저녁에 정찬을 하게 되면 와인 잔 두 개에 촛대가 반드시 따라 나와요.
영국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은 우스갯 소리로 '잔 치우다 시간 다 보낸다'는
말도 해요. 하지만 손님이 미안해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물 잔과
와인 잔 정도만 냅니다."
그가 즐겨 쓰는 정찬용 접시는 영국 로열 덜튼의 파트 스루 파트(점토 위에
점토를 올린 것) 스타일을 선호한다. 대부분의 접시는 100년이 훌쩍 넘은 것
들이다. 홀 마크가 있어 연도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커트러리와 달리 접시는
제품에 연도 표기가 없다. 따라서 전적으로 딜러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최근에 수프 볼을 들여오다 세관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100년이 넘은 앤티크
에는 세금이 안 붙는데, 제가 산 건 100년이 안 돼 세금을 내야 한다는 거였
어요. 딜러 말로는 100년이 넘은 거라고 했는데, 문화재청에 감정을 의뢰
했더니, 100년이 안 됐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어쩔 수 없이 세금을 냈죠.
접시를 컬렉션하다 보면 가끔 그런 일이 생겨요."
도자기는 1800년대, 영국에서 본 차이나가 개발되면서 전성기를 이루었다.
도자기를 빚을 때 동물 뼈를 넣으면 더 단단해 지고 가벼워 진다는 걸 안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본 차이나는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Aynsley와 Coal port 등이 유명하다. 그는 당시 제품 중 온레이(은을
세공한 후 덧댄 것)과 오버레이(은가루로 그림을 그린 것) 제품을 특히 좋아
한다. 많이 알려진 독일 마이센 제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서울 이태원
에서도 살 수 있을 정도로 너무 흔하다는 게 이유다. 마이센 제품 중 컬렉션
리스트에 오른 건 1800년대 초반 제품 정도다.
"저는 묵은 것이 좋아요. 제 컬렉션의 기준은 사용하면서 즐길 수 있는 것
이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일단 용도에 맞아야 하고, 다른 것과 매칭이 잘
돼야 해요. 일상에서 쓰니까 가끔 깨지기도 해요. 아깝지만 어쩌겠어요.
그게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받아들여야죠."
디캔터가 있는 와인 파티용 식탁
거실 중앙을 가로질러 놓인 계단을 따라 오르면, 와인 테이블이 세팅돼
있다. 와인 테이블에도 메인 접시와 개인용 접시가 놓여 있다. 메인 접시는
치즈용과 샐러드 등 젖은 음식을 담을 접시를 따로 준비해야 한다. 여기에
와인 잔과 물 잔이 따라 나온다.
와인 테이블에 빠질 수 없는 게 디캔터다. 유럽의 와인 테이블에는 반드시
디캔터가 있다. 유럽에서는 여우 사냥을 갈 때 빼고는 와인 병을 테이블에
놓지 않았다. 디캔터가 필수였다는 얘기다.
디캔터는 영국과 미국 제품이 유명하다. 백 대표의 컬렉션에는 크리스털
혹은 유리와 은으로 만든 디캔터 Claret jug도 편하게 쓰는 것이 많다. 시대
별로는 아르데코 시대와 아트 앤 크래프트 시대의 제품에 손이 간다. 컬렉션
중에는 실버와 매칭하거나 크리스털로만 제작된 디캔터도 있다.
와인 잔은 오버레이 장식이 된 잔이나, 크리스털 잔, 에칭 처리가 된 잔 등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골라서 쓴다. 컬렉션 중 오버레이가 들어간 6개 와인
잔 세트 등은 유럽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귀한 제품이다. 대부분의 와인 잔은
60~80년 된 빈티지가 많다.
컬렉터의 안목이 고스란히 담긴 다실과 장식장
2층 한실과 아들의 공부방 사이, 작은 공간에는 한국 앤티크들이 정성스레
놓여 있다. 조용히 놓인 소반 위 천장에는 다락방에 이르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서자 작은 다실이 나타났다. 다락방 한 가운데 작은 소반이
차려졌고, 그 옆으로 두 개의 장식장이 눈에 들어왔다. 장식장은 동서양의
앤티크가 사이좋게 진열돼 있었다. 백 대표는 "동양 것이든 서양 것이든 묵은
것들은 잘 어울린다"고 했다. 방 한쪽에는 한 쌍의 목안(木雁)이 사이좋게
둥지를 틀고 있었다.
다락방은 특히 그가 사랑하는 공간이라, 웬만한 손님에겐 공개하지 않는다.
따라서 식구들 끼리 올라가서 차 마실 때가 많다. 벽을 등지고 자리에 앉자
작은 창으로 산수화가 펼쳐진다. 창 아래 탁자에는 15세기 계룡산 분청주병과
막사발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그는 한국 앤티크를 컬렉션하면서 자연스레
다도를 배우게 됐고, 다실을 꾸미게 됐다.
"이사 와서 리모델링 하면서 고재로 창문을 달고, 수납장도 배접 처리해서
달았어요. 이곳에서 보는 경치가 최고예요. 차를 배우긴 했지만 도 까지는
아니고, 그냥 차 생활을 한다고 생각해요. 스테이크 먹고 입가심으로 말차를
마시는 정도죠."
다락방을 내려와 2층 중앙 계단에 서면, 고급스럽게 놓인 보석함을 만나게
된다. 보석함을 열자 대삼작 놀이개ㆍ투호삼작 놀이개ㆍ매화장 비녀ㆍ투각
옥비녀 등 조선 중기~후기 명문가 아녀자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보석이
눈에 들어 온다.
"어려서도 팬시 제품을 좋아했어요. 예쁜 건 모으고, 가끔 친구들한테 나눠
주었고요. '이고'도 그 연장선이에요. 동호인들 끼리 모여서 이런 문화를
함께 누리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에요."
그는 지금도 컬렉션을 멈추지 못한다. 스푼 하나에 20만 원부터 1000만 원이
넘는 것도 있지만, 좋은 것을 보면 컬렉션을 멈출 수가 없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에게 선택받은 컬렉션들은 '갤러리 이고'의 새로운 주인인 될 것이다.
그는 항상 새로워지는 '갤러리 이고'에서 많은 이들이 앤티크의 가치를 알고,
함께 즐기기를 바란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 [THE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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