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연구
(박상철)
박상철 / 전남대 석좌교수
서울대 노화 고령사회 연구소장ㆍ국제 노화학회장ㆍ국제 백세인 연구단 의장 등을 지냈다. 노화연구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ㆍ올해의 과학자상 등도 받았다. 1980년 서울대 의대 강단에 선 뒤 30년 넘게 교편을 잡은 그는 2013년 삼성종합기술원(종기원) 웰에이징 연구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6년 DGIST(대구 경북과학기술원)를 거쳐 2018년부터 전남대에서 일한다. 또래들은 이미 은퇴했을 시기지만, 여전히 부르는 곳 많고, 할 일 많은 현역이다. 모든 사람이 한 살씩 더 먹으며 노후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시절, 그와 마주 앉았다. 다이내믹한 행보다. “의도한 건 아니다. 2013년 대학을 떠나 종기원에 갈 때 포부가 컸다.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노화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자금ㆍ인력 아낌없이 지원할 테니 세계 최고 노화연구소를 만들어 보라고 했다. 그런데 이듬해 이 회장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관련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아쉽지만 도리가 없었다. 이후 연구 중심대학 DGIST에서 제안이 왔고, 노인한테 필요한 과학 기술 개발에 주력하자는 생각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셨다. 생각해 보니 죄스럽더라. 명색이 장수 학자이고 오랫동안 ‘백세인’을 연구했는데, 우리 아버지는 91세에 돌아가신 거다. 당시 88세이던 어머니도 조금만 몸이 안 좋아지면, ‘느그 애비가 부르는가 보다’ 하며 삶의 의욕을 잃으신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때 대오각성했다. ‘내가 연구한 걸 쏟아부어 어머니 만큼은 백세인이 되시게 해야겠다’ 마음먹고, 어머니와 함께 살러 고향행을 택했다.”
연구에 참여 한다고 했다. 각종 학회 참석 등으로 서울에 들를 일도 많아 광주 대구 서울을 삼각형으로 왔다 갔다 한다며 너털 웃음을 지었다. 노화 등을 꾸준히 연구해 왔다. 2001년 의학ㆍ심리학ㆍ가족학ㆍ영양학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한 연구팀과 함께 전국을 돌며 100세 이상 어르신을 만나 장수 비결을 확인하는 연구도 했다. 우리나라 백세인의 실태를 종합 분석한 이 연구는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자타 공인 장수 분야 최고 전문가 박 교수가 어머니에게 적용할 ‘100세 비법’이 뭘지 궁금했다. 그는 “특별할 건 없는데…” 라며 빙긋 웃더니 “어머니를 자꾸 움직이시게 하는 게 첫째” 라고 답했다.
“내가 1967년 대학 입학하며 집을 떠나 서울에 왔다. 2017년 말, 50년 만에 돌아간 거다. 그사이 어머니는 아흔, 나는 일흔이 됐다. 하지만 둘이 있을 때는 예전 모습 그대로 지낸다. 어머니가 깨워 주시면 일어나고, 밥 차려 주시면 먹는다. 내가 어머니 돌보는 건 하나도 없고, 어머니가 큰아들 ‘모시느라’ 바쁘시다(웃음). 그걸 내가 유도한 거다.”
“그렇다. 아내 등 다른 가족은 원래 우리 집에 있고, 나 혼자만 광주에 갔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이 사시던 집에 들어간 거다. 여동생 두 명 집이 가까이 있어 자주 드나들며, 이거저거 도와 주긴 한다. 막내가 63세인데 ‘오빠가 광주 와서 힘들다’고 하소연 하더라. 어머니가 ‘느그 오빠 매생이 좋아햐’ ‘느그 오빠 방어 좋아햐’ 하며, 자꾸 나 먹일 반찬 장 봐오는 심부름을 시키신다는 거다. 내가 이른바 노노(老老)케어의 실제 사례다(웃음).”
바로 ‘계속 움직인다’였다. 나이 들었다고 ‘에구구구 팔 다리 어깨 허리야’ 하면서 드러 누우면 오래 못 산다.”
제안했다고 한다. 박 교수가 20개 할 사이 30개 이상을 거뜬히 하는 체력을 자랑했다. 또 다른 100세 어르신은 밭일을 마치고 지게를 진 채 집에 들어왔다. 101세 할머니 한 분은 고관절 골절상을 당한 상태라 진찰을 해 드리려고 잠시 누우시라고 하니, ‘죽을 때나 눕는 거지, 왜 누우라고 해’ 하며 호통을 쳤다. 이들을 만나며 박 교수는 “몸을 움직여야 오래 사는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데 더 오래 산 부모는 대개 아파도 가만히 있지 않으려 했다. 텃밭을 가꾸든 광주리를 짜든 쉬지 않고 움직였다. 문 밖 출입이 어려우면, 방 청소라도 했다. 하나 같이 ‘빈둥대려면 왜 살아?’ 라고 말했다. 내가 고향에 간 것도 아버지와 함께 사실 때는 젊은 시절과 다름없이 지내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삶의 의욕을 잃고 아무 것도 하기 싫어하시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강의를 했을 때다. 95세 할아버지가 수강 신청을 했다. 수업을 잘 따라 오실 수 있을까 걱정하는 기색을 보였더니, ‘박 교수, 내가 수업 못 받을 이유가 있나’ 하시더라. 그 자신감과 활력에 깜짝 놀랐다. 실제로도 다른 어느 수강생 못지않게 전 과정을 마치셨다. 101세일 때 일본에서 만났는데, ‘한국인이니 한국어로 대화하자’며 막힘없이 우리 말을 하더라. 65세 때 한국어를 배웠다고 들었다. 이후 95세에 중국어 공부를 시작해 100세 때 중국에서 중국어로 강연을 했다. 내게 ‘100세부터 러시아어를 배우고 있다’며, ‘러시아 여행을 갈 계획’이라고도 했다. 줬는데, 한 발로 서서 돌고, 양손을 등 뒤로 맞잡는 등 균형감과 유연성이 필요한 동작이 많았다. 젊은 학자들이 따라 하다 ‘아이고 허리야’ 하면서 포기할 만한 체조를 꾸준히 하며 체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의지하며 살아가는 게 일반적인 모습인 줄 알았다. 현실은 다르다. 병들고 기력 떨어진 사람은 오래 못 산다. 달리 말하면 장수인은 대부분 건강하다. 누구한테 의지하는 법 없이 젊을 때 생활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며 산다. 외국에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고, 세계 여행을 다니는 백세인이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 백세인은 건강하고 똑똑한데도 가족ㆍ동네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 백세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사라져야 그분들이 위축되지 않고 더욱 당당하게 자기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사람이 오랫동안 건강히 살려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관계다. 부부관계가 좋으면, 최선이겠지만, 백세인 중 그런 분은 많지 않다. 자식과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은게 보통이다. 2001년 백세인 연구 당시 혼자 사는 분이 전체의 12% 수준이었다. 2018년 다시 조사해보니 이 비율이 25%로 높아졌다. 그런데 이 분들이 진짜 혼자 사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다. 하나같이 친구 또는 이웃과 교류한다.” 수북이 쌓여 있어 ‘저걸 드시는 거냐’고 물으니, ‘동네 사람들 오면 줄라고 놔뒀지’ 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런 마음가짐 덕인지 이 할머니 댁에는 사람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아이들도 무시로 들러 ‘할머니~’ 하며 재롱을 부렸다. 49명을 대상으로 주부 양자를 조사했을 때 전체의 67.3%(33명)를 큰 며느리가 모셨다. 큰 며느리가 사망하면 큰 손주며느리가 책임을 이어받았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밝혔다. 담양, 전북 순창 지역 9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현황 조사를 실시했다. 정확한 분석 결과는 2019년 2월 공개된다. 박 교수가 일부 소개한 내용에 따르면 이번 조사에서 가족과 같이 사는 백세인은 전체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그중 절반은 딸이 모셨다. 양로 시설 입소율은 2001년 당시 5% 수준에서 이번에 20%대로 크게 높아졌다. 10여 년 사이에 가족 문화가 완전히 바뀌어, 노 부모는 ‘형편 되는 자식이 모시는’ 세상이 된 것이다. 박 교수는 “이제 주변 사람과의 교류가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됐다. 나이 들었을때 좋은 이웃이 있으면 잘 살고, 없으면 삶이 처참해 진다”고 강조했다. 기대고 의지하는 사람 옆에 누가 있으려고 하겠나. 나이 들어도 내가 할 일은 스스로 ‘하고’, 내가 가진 것을 주위
사람한테 나눠 ‘주고’, 새로운 지식을 계속 ‘배워야’ 친구가 생긴다.” 바닥에 쪼그린 채였는데, 가만 보니 운동을 안 해 생긴 관절염 탓에 혼자 서 있을 힘이 없어서인 듯했다. 그렇게 계시던 분들이 무료 점심 배식이 시작되자 급식차 앞에 수십 미터는 될 정도로 길게 늘어섰다. 대부분 할아버지이고 할머니는 몇 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할머니들은 스스로 밥을 해 먹을 줄 아니 노년기에도 스스로 삶을 꾸린다. 반면 할아버지들은 돈 있으면 사 먹고, 없으면 공짜 밥을 받아 먹는다. 삶이 초라해 지고, 그러면 오래 못 산다. 노화 연구자로서
이런 현실을 바꿔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한국 남성이 노년기에 특히 더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여성 또한 더 많이 움직여야 더 오래 살 수 있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박 교수는 이때 부터 노인들이 쉽게 배우고 즐겁게 따라 할 수 있는 우리춤 체조를 제작해서 보급하기 시작했다. 중년 이후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골드 쿡’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노인들이 새로운 지식을 계속 습득하며 현실에 발맞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제3기 인생대학’을 만든 것도 이때 이후다. ‘제1기(교육기)인 10~20대와, 제2기(직장생활기)인 30~50대를 지나 제3기는 삶의 새로운 시기를
뜻한다. 하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데 안 해서 못하는 거다. 나는 사람들에게 ‘까짓거 해불자’고 말한다. 나도 나이 들어 요리를 배웠다. 지금 어머니께 맡기는 건 못해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좀 더 움직이시도록 돕기 위해서다(웃음).” 좋은 걸 먹는다든지 말이다 - 영양소를 골고루 균형 있게 섭취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조리 방법 또한 마찬가지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언제, 얼마만큼’ 먹느냐다. 백세인의 공통점은 때를 지켜서, 제 양에 맞게 먹는다는 점이다. 소식이 아니다. 제 양만큼 절제해서 먹는다. 2001년 조사 대상의 92.1%가 3끼를, 7.9%는 2끼를 정해진 시간에 챙겨 드셨다. 음주ㆍ 흡연을 해도 자기 기준을 넘기지 않았다. 조사 대상의 25.4%가 술을 드셨는데, 절반 이상(54.6%)이 1회 1잔 이하 수준이었다. 카페인 음료는 대부분 안 드셨으나, 한 분은 커피를 하루 3잔 이상 규칙적으로 마시고 계셨다. 좋은 거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는 것 보다 생활 패턴을 꾸준히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영어 'aging'은 나이듦과 노화 둘 다로 해석할 수 있다. 나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