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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나박김치 (박정숙)

clara40 2020. 2. 14. 11:01



                                   나박김치

                          (박정숙)


         


  요즘 나보다 훨씬 선배벌 되는 어느 여인의 자서전을 읽고

있는데, 시인도 아닌 그분의 이 시가 인상적이어서 옮겨

보기로 한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요양원에 입원 중인 남편을 위해 80을

넘긴 나이에 나박김치를 84통이나 담가 날랐다고 한다. 


※ 책 "1929년생 박정숙 人生小史 - <달리라니 달렸다>"

    이화여고 - 연세대 영문과 졸업후 경력으로 UNKRA

    (국제연합 한국재건단)ㆍAsia 재단을 거쳐 12년간

    한국 걸스카우트 사무총장 역임.


   


         나박김치


여보! 당신 위해 나박김치

갖은 재료 작게, 얇게 썰어

소꿉장난 같은 물김치를 담았어요.

드문드문 남은 몇개 안되는 이로

오작오작 씹는 소리 재미있어요.

그동안 잡수신 나박김치가 84통이네요.


여보! 당신 위해 10년 넘게 요플레를 만들었어요.

블루베리, 딸기, 마른 무화과 작게 자르고,

꿀가루 넣고, 당신 입에 맞게 만들었어요.

맛있게 받아 잡수시니 아주아주 예뻐요.


여보! 당신 위해 가래 삭는 약 만들었어요.

약도라지 씻어 말려

생강, 대추, 감초, 배 넣고 푹 끓였어요.

달달하고 쌉쌀해도

잘만 받아 잡수시니 너무너무 고마워요.


하나님! 제가 하루 걸러 남편 보러 가는 날에는

제발 비가 오지 않게 해주세요.

오른손엔 지팡이 왼손엔 물건 망태기

비가 오면 우산 받을 손이 없어요.

결혼 생활 56년간 받은 당신의 사랑을

이것으로 1/10000인들 갚겠는가 만요.

남은 날 동안 온갖 정성 다해 웃으면서

당신만을 사랑할게요. 사랑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