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名畵
작가 : 이불해(李不害)
제목 : 예장소요도(曳杖逍遙圖)
언제 : 16세기 후반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이불해는 조선시대 중기의 선비화가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신상에 대하여는 밝혀진 사실이 적다. 자(字)가
태수(太綏)라는 것과 정호음(鄭澔陰)의 시에 이르기를
삼우(三友) 즉 山水. 난죽(蘭竹). 금주(琴酒)를 잘한
인물로 전해온다. 실제로 현존하는 작품이 드물어,
그의 회화 수준이나 화풍은 예장소요도에 의존하여 왔다.
아주 작은 소품이긴 하지만. 水墨과 담청(淡靑). 필치가
간결하고 깔끔한 가작(佳作)이다. 또한 작은 화면이지만
근경의 석교(石橋)와 나무. 고사(高士)등 경물이 배치된
언덕에서 바라본 원산의 안개 처리는. 시원한 공간감을
느끼게 해준다.
언덕 위의 고사(高士) 좌우에 배치된 소략한 나무들의
표현은 안견 화풍의 변모로 여겨진다. 즉. 안견의 작품으로
전해오는<사시팔경도>에 보이는 잡목의 수지법(樹枝法)을
연상케 한다.
개활함은 안개에 싸인 원산에서. 그리고 그 표현은 남송대
화풍을 반영한 것이다.
호연지기 속에있는 지팡이를 의존한 고사 인물의 묘사는
중기에 유행하는 절파계(浙派系) 화법의 냄새도 풍긴다.
이처럼 예장소요도에는 초기부터 이어온 여러 화풍과 새로운
양식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으며. 이는 중기 회화 경향의 한
단면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이 작품 외에 이불해의 것으로 전칭해 오는 몇 점의 산수도
들은 중기에 두드러졌던 절파계 화풍의 영향이 가미되어 있다.
작가 : 이경윤(李慶胤)
아호 : 낙파(駱坡)·낙촌(駱村)·학록(鶴麓)
아호 : 낙파(駱坡)·낙촌(駱村)·학록(鶴麓)
제목 : 산수인물도(山水人物圖)
언제 : 16세기 말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이경윤은 성종(成宗)의 제11자인 이성군(利城君) 이관(李慣)의
종증손(從曾孫)으로, 16세기 후반의 화단(畵壇)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사인(士人) 화가이다.
그는 특히 산수와 인물을 잘 그렸다고 전하며. 아우 이영윤
(李英胤)과 그의 아들 이징(李澄) 역시 일가를 이루었다.
산수 인물도는 동자를 거느린 두 노인이 담소하고 있는 장면을
넓은 산수를 배경으로 그린 대경(大景) 산수 인물화이다.
인물을 중심으로 한 전경은 담채와 농묵으로 처리하고. 상단
전체에 넓게 펼쳐져 있는 원산과 그아래 마을은. 담묵으로 처리
하여 거리감이 드러난다.
전체적으로 복잡한 느낌을 주지만. 공간이 크게 확대되어 있고,
산이나 바위는 흑백의 대비가 현저한 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비스듬하게 솟은 산들은 절파계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고담(枯淡)한 배경 묘사와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자세. 암벽뒤에
그려진 학에 의하여 청정한 분위기가 감돈다.
작가 : 이경윤(李慶胤)
아호 : 낙파(駱坡)·낙촌(駱村)·학록(鶴麓)
제목 : 고사탁족도(高士濯足도)
언제 : 16세기 말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이경윤의 작품으로 전칭되는 산수화 중에는 소경(小景) 산수
인물화 계통의 그림들이 많다. 그 중의 하나인 이 고사탁족도는
낙파연주첩(駱坡聯珠帖) 이라고 표제(表題)된 화첩에 속해 있던
것이다.
나무 아래의 물가에 앉은 선비가 술 주전자를 받쳐 든 시동을
바라보며,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장면을 묘사했는데, 가벼운
여행용 봇짐을 등에 메고 술 주전자를 든 동자의 모습이라든가,.
앞가슴을 풀어 헤친 선비의 모양새 등으로 보아 세속의 명리
(名利)를 떠나. 흐린 물에 발을 씻었다는 은일파 초탈의 심회를
담은것이 아니라, 먼 여행에서 돌아와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쌓인 먼지을 씻으며, 술을 대접 받았다는 선화유사(宣和遺事)의
내용을 그린것으로 생각된다.
구도는 수하(樹下) 인물도 계열의 오랜 전통을 따랐으나, 토파와
냇돌, 의습선 등에는 절파풍(浙派風)이 완연하다.
단아하게 생긴 선비의 얼굴 모습은 호림(湖林) 미술과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그의 산수 인물도들의 소사들과 닮아 보인다..
그러나 옷주름의 필선은 그들 보다 경직된 느낌을 준다.
화면의 오른편 상반부의 깁 바탕이 탈손되어 있는 등 보존 상태는
좋지 않으나, 나뭇 가지와 인물의 의복 등에는 담채의 색조가
비교적 곱게 남아 있으며,. 전반적으로 깔끔한 분위기가 감돈다.
작가 : 이정(李楨)
아호 : 나옹(懶翁)·나재(懶齋)·나와(懶窩)·설악(雪嶽)
아호 : 나옹(懶翁)·나재(懶齋)·나와(懶窩)·설악(雪嶽)
제목 : 산수도(山水圖)12면 중4면
언제 : 17세기 초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이정은 30세의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조선 중기의 대표적 화가 중의
한사람이다. 허균(許筠)이 쓴 이정애사(李楨哀史)에 의하면 그는
이배련(李陪蓮)을 할아버지로, 이숭효(李嵩孝)를 아버지로 해서
태어났으나,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집에서 그림 공부를 했다고 한다.
5살 때 승형(僧形)을 그렸으며, 10세에 이미 대성하여 산수ㆍ인물ㆍ
불화 등에 모두 능통했고. 1606년에 명사(明使)로 우리나라에 왔던
문인 화가 주지번(朱之蕃)으로 부터는 천고에 최성(最盛)이고, 해내
(海內)에 짝이 드물다"는 절찬을 받기도 하였다.
12엽으로 이우어진 이 화첩에는 그의 이러한 천재적 면모와 기질이
잘 담겨있다. 그중 4엽 만이 소개되었는데, 모두 방일(放逸)한 발묵
(潑墨)과 파묵(破墨)의 묘취(妙趣)가 넘치는 일품들이다.
번지듯 스며있는 담묵의 바탕에 거칠고 대담한 묵찰(墨擦)을 가하여
화면에 강한 활력을 불어 넣었으며. 특히 2.3엽에 보이는 지극히 종일
하고 과격한 농묵의 붓질은 마치 파격적인 일품 양식의 선종화
(禪宗畵)를 대하는 듯 하다.
이렇듯 대담한 성격의 묵법은 다음 <산수도)에서도 볼수 있었던 절파
계의 조야(粗野)한 필묵법이 더욱 방일하게 발전된 것으로, 여기에
남송대의 선승화가(禪僧畵家) 목계(牧谿)와 옥간(玉澗)의 산수화
풍과 선종 인물화의 호방한 양식, 그리고 그의 천재적이고 방외인적
기질 등이 가미 되었다고 볼수 있다.
신흠(申欽)이 이정의 화풍에 대해 인공(人工)의 전륜함을 넘어 신품
(神品)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 평도 이정의 묵묘 솜씨를 두고 했던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작가 : 윤의립(尹毅立)
아호 : 월담(月談)
아호 : 월담(月談)
제목 : 春.夏.秋.冬景山水圖
언제 : 17세기 전반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윤의립은 조선시대 중기의 선비 화가로서. 현존하는 작품이 많지
않으며, 여기에 소개한 산수화첩으로 그의 회화를 평가해 왔다.
자(字)는 지중(止仲), 호(號)는 월담(月談), 초명(初名)은 의립
(義立)이었다.
산수화첩을 통해 본 윤의립의 회화는 중기 화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점유한다. 여기적(餘技的) 미숙함을 탈피한 화격
(畵格)을 갖추고 있고. 중기 회화의 동향인 복합적인 화풍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춘하추동 네 계절을 표현한 화첩은 현재 6폭이 전해 온다. 두점은
파본된것 같다.
1폭은 낮은 언덕 위의 두 거목(巨木)이 화면을 인상깊게 차지
하였다. 그 언덕 아랫 길에 봄나들이를 나선 듯 일산(日傘)을 쓴
선비와 시동이 점경 인물로 등장하였다.
부채살 처럼 펼쳐진 나뭇 가지에 연한 태점으로 잎을 표현한 두
그루의 거목은 느티나무를 연상케 한다. 두 거목에 언덕 아래
좌측으로 뻗은 넓은 잎의 가지 표현으로 변화를 주었다. 거목
위로 보이는 원산의 능선 모습과 흐름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산을 닮았다.
2폭은 대각선으로 배치된 강 언덕의 포치는 편파 구도를 따른
것인데, 세척의 배를 가까이 끌어들여 진한 먹으로 크게 묘사
하였다. 그럼으로서 화면의 좌우 평형을 유지시켰고,. 반면에
편파 구도 양식의 균형을 깬 것이다.
3폭은 넓은 수면과 강가 풍경을 편파 구도 형식으로 담았다.
근경에는 언덕과 소나무가 화면의 엑센트로 표현되었고, 그
뒤로 긴 나무 다리가 그려져 있다. 다리 위의 점경 인물은
짐을 실은 나귀와 시종, 봇짐을 긴 가지에 걸어 어깨에 멘
시종을 앞세우고, 지팡이를 짚고 가는 선비를 그려 넣었다.
중경의 거암과 폭포, 그 뒤로 강안과 마을, 원산을 표현한
담묵의 시원한 부벽 준법은 하규 화풍을 가장 근접하게
반영한 것이다.
4폭은 안견파 화풍을 소화한 것이다. 즉 좌측 아래의 한림
(寒林)의 수묘법(樹描法과 언덕의 고실고실한 붓질이나.
누각 표현에서 볼수있다. 좌측 언덕과 경물의 배치는 편파
구도를 새롭게 구성시켰다. 겨울 강변의 설경을 담은 이
그림은 빠른 필치의 간결함이나 담묵과 극히 절제된 담채의
차분한 표현으로. 산수화첩의 그림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다.
동경산수도에만 “월담?묵” 이라는 행서체 주필(朱筆)이 씌어
있어 윤의립의 그림이라는 것을 확인케 해 준다.
춘(春)
하(夏)
추(秋)
동(冬)
작가 : 이징(李澄)
아호 : 허주(虛舟)
아호 : 허주(虛舟)
제목 : 이금산수도(泥金山水圖)
언제 : 17세기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흩어진 듯 화면을 꽉 채운 각 경물들은 근경ㆍ중경ㆍ원경으로
이어지면서, 웅장하고 균형 잡힌 원근 화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체로 화면의 무게가 오른편으로 다소 치우쳐 있어, 안견파의
편파 구도적인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안견파의 전통은 구도와 공간 구성, 해조묘의 수지법, 준법과
필묵법 등에서도 완연하다.
그러나 보다 확산된 공간 개념과 산들의 흩어진 모습 등은
17세기 적인 특징을 말해 준다.
작가 : 김명국(金明國)
아호 : 연담(蓮潭) 또는 취옹(醉翁)
아호 : 연담(蓮潭) 또는 취옹(醉翁)
제목 : 四時八景圖 4폭
언제 : 1662년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김명국은 17세기의 조선 화단에서 여러 분야에 두루 뛰어났던
화원(畵員)으로, 자는 천여(天汝), 호는 연담(蓮潭) 또는 취옹
(醉翁)이다.
그는 도석인물(道釋人物)ㆍ초상ㆍ불탱(佛撑) 및 산수에 이르기
까지 다방면에 걸쳐 수작(秀作)을 남겼다.
당시 화단에 크게 유행했던 절파계(浙派系) 화풍의 가장 대표
적인 화가일 뿐더러 조선 시대에 있어 흔치 않은 선종화(禪宗畵)
계통의 그림도 남기고 있다.
이그림은 이금산수(泥金山水)로 사계절을 8폭에 담은 화첩 중
초춘(初春)ㆍ만춘(晩春)ㆍ초하(初夏)ㆍ만하(晩夏)의 네폭이다.
각 계절마다 두 폭씩 8폭으로 꾸미는 것은 조선 전기에 있어서는
필자 미상의 소상팔경도나. 안견 전칭의 사시팔경도가 현존되어
일찍부터 그려졌음을 알수 있다. 중기에는 이불해의 전칭작이나
이징의 작품이 전래되고 있으며, 후기에는 정선ㆍ최북ㆍ강세황ㆍ
심사정 등에 의해 줄기차게 그려졌다.
이그림은 두폭씩 한 쌍을 이루되, 각기 좌우에 치중하여 중앙을
비우는 화면 구성을 이루고 있다.
初春은 오른 쪽으로 비중을 둔 그림이다. 春景에는 수면을 비교적
좁게 나타냈고, 물결이 잔잔하며 전경 에 나타난 수종은 덩굴이
감긴 노송으로 되어있다.
晩春에 이르면 버드나무가 전경에 등장하여 우중 임을 알려주고,
물살이 다소 높아져 있다.
晩夏는 야경으로 보름달이 중천에 떠 있으나, 전경의 나무들은
바람에 크게 흔들리며 사뭇 동적으로 나타나 있다.
김명국은 산수에 있어 소방한 절파계 화풍만이 아니라. 전기
화단의 안견 화풍도 오히려 노년기에 접어들어 그리고 있어,
사시팔경도 화첩 및 남궁연 소장 화첩들은 그의 또 다른 면모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들이기도 하다.
신위가 김명국의 그림에 쓴 제발에 언급했 듯이 백년 안에 나오기
힘든 화가로서 17세기에서 활동이 두드러진 가장 괄목 할만한 화원
이었다.
작가 : 김명국(金明國)
아호 : 연담(蓮潭) 또는 취옹(醉翁)
아호 : 연담(蓮潭) 또는 취옹(醉翁)
제목 : 雪景山水圖
언제 : 17세기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김명국은 도화서(圖畵署)의 교수를 지낸 화원으로 이름이 명국
(明國 또는 鳴國)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성격이 호방하고
술을 좋아하여. 크게 취해야만 그림을 그리는 버릇이 있어,
대부분의 그작품은 취한 후에 그려진 것이라 한다.
이 그림에도 그의 특색이 잘나타나 있는데, 다른 그림들에
비하여 화면이 약간 정리된듯 하지만. 활달성은 한층 심화
되어 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겨울 새벽녘인 듯한 시각에 사립문에
기대어 전송하는 동자와 뒤를 돌아다 보며 길을 떠나는 나귀
탄 고사와 종자의 송별 장면이 눈 덮힌 설경을 배경으로 그려
졌다.
중경에 그려진 넘어질 듯 솟아 오른 산의 무게를 대각선 상
에서 받치면서 화면의 변각 구도를 보강해 주고 있는 다리와
그 위의 기려(騎驢) 인물은 패교를 건너 설산으로 매화를 찾아
떠났다는 당나라의 시인 맹호연(孟浩然)을 연상케 한다.
언덕 과 눈 덮인 산 기슭과 앙상한 나뭇 가지와 인물들의 옷
주름에 가해진 힘차고 날카롭게 각진 윤곽선이라든지 거친
묵법 등은 광태파 화풍과의 유관함을 보인다. 또한 어둡고
차가운 설경속 화중 인물의 심의(心意)를 잘 승화 시키고 있다.
작가 : 김명국(金明國)
아호 : 연담(蓮潭) 또는 취옹(醉翁)
아호 : 연담(蓮潭) 또는 취옹(醉翁)
제목 : 탐매도(探梅圖)
언제 : 17세기 중엽
소장 : 국립광주박물관
소장 : 국립광주박물관
해설 : 이 탐매도에는 김명국의 광태적 화풍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
즉 산 등성이와 암괴(岩塊)는 굵고 힘찬 필치로 대담하게 묘사
되었으며, 지팡이를 비스듬히 잡고 있는 은사(隱士)와 그옆의
시자(侍者)의 의습선(衣褶線)들은 분방하면서도 날렵하여 김명국
특유의 체취를 느끼게 한다.
강한 필치가 연두색 등의 연한 담채에 어울려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며, 화면 전체에 서정적인 분위기가 넘치고 있다.
다만 포치(布置)가 다소 옹색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아쉽다.
작가 : 김명국(金明國)
아호 : 연담(蓮潭) 또는 취옹(醉翁)
아호 : 연담(蓮潭) 또는 취옹(醉翁)
제목 : 달마도(達磨圖)
언제 : 17세기 중엽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김명국은 절파풍(浙派風)의 화가로 유명하지만, 선종화
(禪宗畵)에서도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 중에서도 이 달마도는 조선 시대의 선종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원래 이그림은 일본에서 유전
하던 것인데, 8.15해방 후에 구입해 왔다.
따라서 작품의 제작 시기는 그가 통신사의 수행 화원으로
도일했던 1637년과 1643년의 어느 해일 것으로 추정된다.
김세렴(金世濂)의 해사록(海__錄)에 의하면, 그는 사행
(使行) 기간 동안 일본인들의 그림 요청이 매우 심해서
이에 응하느라 밤잠 조차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
다고 한다.
남인 도인으로서 6세기 경 중국에 건너가 선종의 시조가
되었다는 보리달마(菩리達磨)의 모습은 선종화의 중요
화제(畵題)로서 즐겨 다루어지던 것이다.
여기서는 두포(頭布)를 쓴 달마의 상반신만을 묘사했는데,
9년 동안의 면벽 좌선으로 고양된 그의 내면 세계가 대담
하고 힘찬 몇번의 붓질로 잘 포착되어 있다.
옷 주름에 나타난 극도로 생략된 감필 붓 자국의 굵고 가는
선폭의 결과 모양은 화면에 강렬한 인상을 부여해 주며,
재빠른 필선의 속도에서는 작가의 활기찬 움직임이 느껴
진다.
이렇듯 일기(逸氣) 넘치는 화풍은 오대의 석각(石恪)양식에
그 맥을 대고 있지만, 호방하고 방일(放逸)했던 그의 기질
과도 상통되는 바 크다.
작가 : 김명국(金明國)
아호 : 연담(蓮潭) 또는 취옹(醉翁)
아호 : 연담(蓮潭) 또는 취옹(醉翁)
제목 : 달마절로도강(達磨折蘆渡江)
언제 : 17세기 중엽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달마의 초상이나 행적은 선종화에서 즐겨 다루던 소재였는데,
이 그림도 그의 행적 중의 하나를 묘사한 것이다.
6세기 초 중국에 건너간 달마가 양(梁) 나라 무제(武帝)에게
최초로 설법 하였지만,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갈대 잎을 꺾어
타고 양자강을 건너 위(魏) 나라로 갔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한 줄기 갈대에 몸을 싣고 서 있는 달마의 얼굴은 튀어 나온
광대뼈와 매부리코, 치켜 올라간 눈매로 매우 강하면서도
이국적인 인상을 풍긴다.
담묵으로 비교적 섬세하게 묘사된 얼굴에 비해 의복 부분은
죽죽 그어댄 활달한 농묵의 필선으로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주춤거리는 곳이 없는 빠른 속도의 감필묘(減筆描)는 김명국의
세련된 기교를 말해 준다.
이 같이 대담한 필선은 예리한 눈매와 더불어 달마의 농축된
선기(禪氣)를 성공적으로 표출시키고 있다.
전체적으로 왼쪽으로 진전하는 듯한 인상이면서도 옷자락의
끝 단이 윗 쪽으로 날리게 처리한 것은 필선 자체의 추상적
리듬에 치우쳐 사실적인 묘사에 위배된 부분이다.
작가 : 이명욱(李明郁)
아호 : 악치(중국맹영광(孟永光)의 호)
아호 : 악치(중국맹영광(孟永光)의 호)
제목 : 어초문답도(漁樵問答圖)
언제 : 17세기 후반
소장 : 간송미물관
소장 : 간송미물관
해설 : 이명욱은 숙종(肅宗)의 총애를 받아 “이명욱과 續__舟筆意”
라고 새긴 도인(圖印)을 특사(特賜)받은 바 있는 화원으로,
도화서(圖畵署)의 교수를 지냈으며. 한시각(韓時覺)의 사위
로도 잘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은 매우 희귀하여, 이 어초문답도가 거의
유일한 진작이지만, 이 한 점만으로도 그의 절륜했던 기량을
충분히 엿볼수 있다.
이 그림은 생활 영위의 장소는 달라도 모두 자연을 벗삼아
지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나무꾼과 어부의 대화 장면을 그린 것으로, 소동파(蘇東坡)의
어초한화(漁樵閑話)에 화인(畵因)을 두고 있다.
무성한 갈대 숲 사이 길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인간과 자연
과의 친화 관계를 상징하고 있는듯한 두 사람의 정다운 대화를
정교한 원체풍(院體風)과 뛰어난 필력으로 묘출해 놓았다.
서로 약간 비껴선 자세에서 몸의 방향을 달리하며 마주보게
한 인물의 배치는 기본적으로 인물화의 고식(古式) 구성법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대각선이 교차되는 화면의 핵심 지점에 인물의 얼굴을
포치한 빈틈없이 짜여진 구도라든지 눈에 잡힐듯이 거의 완벽
하게 묘사된 두사람의 동작과 표정에는 그의 탁월한 재주가
넘쳐난다.
그리고 안면에 밀도를 더해 주고, 바람에 나부끼는 옷 자락을
다룬 힘차고 날카로운 붓질은 그림에 활력을 불어 넣는 구실을
하고 있다.
어느 한 구석도 허술하게 다루어진 데가 없는 그의 재능을 새삼
실감케 해주는 걸작이다.
작가 : 한시각(韓時覺)
아호 : 설탄(雪灘)
아호 : 설탄(雪灘)
제목 : 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부분
언제 : 17세기 후반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한시각은 통정(通政)을 지낸 화원 한선국(韓善國)의 아들로
태어나 그역시 화원으로 도화서의 교수를 지냈다..
1655년에 통신사의 수행 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바 있는 그는
인물화를 잘 그렸던 이명욱(李明郁)의 장인 이기도 하다.
종래까지 한시각은 조선 중기의 회화사에서 김명국 처럼 감필
법의 선종화를 즐겨 그렸다는 점으로 주목을 받아 왔다.
그러나 그가 선종화 뿐 아니라 꼼꼼하게 그리는 기록화에서도
재능이 있었음을 1978년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미공개 회화
특별전에 나왔던 이 그림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이 그림은 함경도 길주(吉州)에서 특별히 실시되었던 문무양과
도회시(文武兩科都會試)의 장면과 이 양시(兩試)에 관련된 모든
기록을 담은 7미터에 가까운 장권(長卷)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시험 장면은 문과와 무과로 나누어 그렸는데, 무과시의
광경이 먼저 다루어 졌다.
과시장(科試場)의 전경을 한 화면에 효율적으로 담기 위하여
다른 기록화들과 마찬가지로 높은 각도에서 내려다보는 식으로
그리는 부감법(俯瞰法)을 사용하였다.
성내의 연병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군기와 천막들, 붉은
조복(朝服)을 입은 단상의 시험관들, 인물 형상을 한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며 말을 모는 무사들, 그리고 차례를 기다
리며 이를 관전하는 응시자들이 열띤 과장(科場)의 분위기를
잘 전해준다.
인물과 건물ㆍ나무들이 모두 섬세한 필치로 정밀하게 묘사
되었고, 특히 먹과 청록으로 그려진 근경과 배경 산의 표면
에는 16세기 우리나라에서만 유행했던 단선점준(短線點__) 이
구사되어 있어 전대의 전통이 계승되었음을 알수있다.
문과시는 두개의 작은 다리가 설치된 개울 건너편의 구조를
달리하는 또 다른 성안에서 실시되고 있다.
무과 시험장의 건물들이 오른 쪽을 향하여 그려진데 반해,
여기서는 대부분 정면을 향해 있으며, 성내에도 민가들이
더 많이 그려져 있다.
응시자들의 정렬된 모습이나 능선이 완만한 뒷산의 평탄한
배열이 무과시의 장면에 비해 정적인 느낌을 준다.
전반적으로 과장의 분위기를 충실히 전달하면서도 비교적
높읕 격조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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