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하지만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왜 결혼했는지 모르겠어.”
나는 말했다. 아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없이 울었다. 난
미안 했지만 등을 돌리고 집을 나왔다. 아내와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이혼 서류를 꺼냈다. “집과 자동차, 부동산과 현금, 그중
에서 당신이 30%를 가질 수 있어.” 아내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튿날 집에 돌아와 보니, 탁자 위에 아내가 써놓은 편지가 있었다.
눈물이 얼룩져 있어서 혹시 내 맘이 흔들릴까봐 읽지 않으려 하다가
나도 모르게 읽어 내려갔다.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다만 한 달쯤 시간을 갖고 싶어. 한 달만
이라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대해줘. 아이 시험기간 이니까 신경 쓰지
않게,,,' 그리고 이혼 조건으로 한 가지 부탁만 할게. 당신이 결혼 첫날
아침 출근 때 나를 안아서 거실에서 현관까지 갔던 것처럼 한 달간만
그렇게 해줘.’ ‘이 여자가 미쳤나?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한 달이면
끝날 일이니까'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해주기로 했다.
첫날 거실에서 아내를 들어 올려 안았을때 몹시 어색했다. 몇 년 간
우린 신체 접촉이 없었으니까. 10보를 걸어 현관까지 갔을 때 뒤에서
아이가 박수를 쳤다. 멋있다면서.... 나는 아이에게 웃음을 지어보이며
아내를 내려놓고 출근했다.
둘째 날은 첫날보다 나아졌다. 아내는 내 가슴에 적극적으로 기댔고,
블라우스 에서는 향기가 났다. 피부의 잔주름을 보면서 그동안 모르는
사이 이렇게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결혼해 이렇게 되었구나
생각하니 조금 미안했다.
셋째날, 넷째날 아내를 들어 올렸을 때, 오래전의 친밀함이 돌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게 자신의 10년을 바친 이 여자. 다음날 또 다음날
아내를 안아 나르는 것이 익숙해졌다.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옷을 고르고 있었다. 옷들이 모두 커져버렸다며
투덜댔다. 그러고 보니 아내를 들면 들수록 가벼워지는 느낌이 있었다.
이혼걱정에 야위어 가고 있는 중일까? 또 다른 아침 아들이 들어오더니
"엄마를 안고 나갈 시간이에요,"라며 미소를 짓는다. 녀석에게 이일이
이제 일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아내는 아이를 꼭 껴안는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드디어 마지막 날이 왔다. 나는 아내와 헤어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이혼을 취소하기로 했다. 회사에서 나온 뒤 꽃집에 들려 부케를 샀다.
부케엔 "나는 이제 부터 죽을 때까지 당신을 아침마다 들어 올릴게"
라고 써달라고 했다.
그리고 집으로 달려갔다. "여보 미안해 우리 헤어지지 말자. 난 당신을
여전히 사랑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소리쳤다.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안방으로 들어서자 아내는 잠든 듯 가만히 누어있었다. 그녀는
숨져 있었다.
아내가 남긴 편지에서 위암 말기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내는 자신의
시한부 삶을 받아 들였고, 아들에게 다정한 부모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
하도록 하고 싶었던 것일까?
부케를 떨어뜨리며, 나는 주저앉은채 아내를 안고 한없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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