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카 여사의 비망록 자료들
하와이에 와서 보행 마저 불편해진 대통령은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해 했는데, 아들
인수가 와서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객지에서 건강이 나빠진 고령의 노인이
아들을 곁에 두게 되자 많은 위로를 받게 되었다. 특히 매일 인수가 예의를 갖추어 아침
문안을 드릴때 마다 몹시 기뻐했다.
우리 세 식구는 아침 7시반에 일어나고 8시반에 식사를 했는데, 식사 전에 대통령이
기도를 했다. 아침 식사는 과일 쥬스 한컵과 빵을 먹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인수와
내가 번갈아 가며 성경과 신문을 읽어드렸는데, 대통령은 인수가 읽으면 더 좋아했다.
내가 아침 설겆이를 하는 동안 대통령은 인수의 부축을 받으며 테라스로 나가서 바깥
공기를 쐬었다. 10시반이면 대통령의 운동 시간인데 부엌에서 약 10m쯤 떨어진 마루방
까지 10회를 왕복하는 일이다.
이것은 의사의 권고에 따라 다리의 보행력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운동으로 대통령은
인수의 부축을 받아가며 걸었다. 그동안 나는 세탁을 하고 점심식사 준비를 했는데,
정오에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은 그날의 식단에 따라 만든 반찬과 밥과 김치였다.
김치는 대통령의 고혈압을 생각해서 아주 작은 양을 접시에 놔드렸는데, 대통령은 늘
인수 앞에 놓인 김치 그릇에서 더 집어다 들었다.
점심 설겆이 할때는 인수도 거들었다. 점심 식사후 약 1시간은 온 식구가 낮잠을 잤다.
대통령은 건강이 좋았을 때는 이 오수 시간 후에 마당에 나가 꽃에 물도 주고 나무 손질도
했었다. 저녁 식사는 하오 6시에 했는데, 주로 밥을 지었지만 때로는 국수를 들기도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이 식성이 좋았기 때문에 반찬이 좋든 나쁘든 우리 식탁 위의 그릇
들은 설겆이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이 비워졌다.
특히 떡국을 끓일때는 부자가 대 환영이었으며, 인수는 세 그릇이나 들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겐 염려할 정도로 떡국을 여러 그릇 들었지만 문제없었다. 저녁
설겆이를 마치면 보통 7시가 넘었는데, 약 10분 정도 성경을 읽고 대통령의 저녁 기도가
끝나면, 8시에는 모두 침실에 들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에도 나를 안타깝게 해주는 것은 자나 깨나 귀국할 일념뿐인 대통령이
또 하루를 하와이에서 보낸것을 못견디게 괴로워 하는 일이었다. 그러면 나는 인수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대통령을 부축하고 인수의 방으로 갔다. 대통령은 인수에게 우리나라로 가는데
드는 여비가 얼마인가를 묻고, '도대체 내가 언제 우리 땅에 가게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최백렬씨와 윌버트 최씨가 환국 여비를 대주기로 했다고 누차 얘기 했지만, 대통령은 '내가
우리 땅을 밟고 죽는 것이 소원인데,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해.... 모두 어떻게 할 작정이냐?'
하며 상기된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혔었다.
나도 인수도 울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고, 기어이 소원을 풀어 드리겠노라고 설명을 드려
겨우 침실로 돌아오곤 했다. 아침 식탁에서도 인수에게 멀리 우리나라 하늘을 가르키며,
'저기가 서편이야. 바로 저쪽이 우리 한인들이 사는데야'하며 대통령은 그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아니, 식사는 안드실 생각이세요?'하고 주의를 환기시켜 드리면 매우 못마땅 한듯이
'왜?'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인수와 둘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때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누가 남북통일을 하려는 이가 있나?'하고 묻기도 하고, '내 소원은 백두산 까지 걸어가는 게야'
하거나, '그래 일인들은 어떻허구 있누?'하면서 종일토록 걱정을 하기 때문에 나는 인수에게
'아버님의 병환은 바로 나라 걱정과 환국하실 걱정이니, 항상 말 조심을 하라'고 일러주었다.
나의 일과중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들은 대통령을 뵙고자 찾아 오는 사람들을 맞고,
우리의 어려운 처지와 생활을 이해하며 도움을 주고 있던 분들에게 감사의 편지와 답장을
쓰는 일이었다. 이중에는 맥아더 장군, 헤리스 목사. 밴플리트 장군, 화이트 장군 등 많은
미국 친지들이 있었고, 당시 공무로 하와이에 왔던 렘니찌 장군은 바쁜 일정 중 점심 시간을
할애해서 대통령을 찾아와 우리를 기쁘게 해 주었다.
특히 고국에서 김이나 마른 반찬감을 선물로 보내 주는 사람들과 봉투에 10달러 5달러씩
넣어 보내 주는 미주 동포들의 온정을 대할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곤 했다. 그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대통령에 관해 터무니 없는 낭설을 만들어내는 이가 있었고, 심지어 이화장에
있던 우리 물건을 몽땅 실어가버린 정치인도 있었지만, 김인서 목사님 같이 용감한 분들은
그후 '망명 노인 리승만 박사를 변호함'이라는 책자를 발간하여 우리에게 보내 주었다.
인수와 함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가끔 대통령은 가슴에 북받치는 격정을 누를 길이 없을
때가 있었다. 그럴때 마다 인수는 '걱정마십시요.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애국하는 젊은이
들도 많습니다. 아버님의 뜻은 결코 어버님 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애국청년에
의하여 계승됩니다'하고 위로해 드리면, '그래 그렇다. 그까짓 다 지나간 일이야'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대통령이 임시 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상해에 갈때 중국인의 시체를 운반하던 배로
선편을 마련해 준 보스윅씨는 우리를 볼때 마다 내 핸드백에다 대통령의 용돈을 넣어 주곤
했는데, 그는 대통령의 귀국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동정한 나머지 우리를 전송하고 돌아
서면서 자기도 우는 것이었다.
마음이 환국 문제로 가득차 있던 대통령은 1961년 성탄절에 교포 김학성씨가 초총해준
만찬회에서 어린이들을 보고 몹시 기뻐하며, '나는 곧 환국한다'라고 자랑삼아 얘기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모두 웃기도 했다.
대통령은 자기의 환국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일본의 속셈과 강대국들의
뱃심이 한일 관계에 자신이 끼칠 영향을 생각해서 귀국을 못하게 누가 조종하고 있는 것
으로 추측했다. '온 천하에 못된 놈들....'하고 대통령이 흥분하기 시작하면, 나는 최백렬
씨를 불러댔다. 최씨는 대통령이 가장 사랑하는 제자의 한사람으로 서로는 부자지간 같이
대했다. 최씨가 오면 대통령은 흥분을 가라앉히는 것이었지만, 건강이 나빠질수록 환국의
뜻은 점점 굳어만 갔다.
'나를 앞으로 20년간 여기다 붙잡아 둘 작정이냐'하고 역정을 내면서, '괘씸한 놈! 내가
걸어서라도 떠날테야'하며 신발을 찾는 일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나는 주치의의 '지금
시기가 지나면 비행기 여행 조차 불가능하다'는 의견과 조국의 땅을 밟아 보고 죽겠다는
남편의 뜻에 따라 1962년 3월 17일을 귀국 일자로 잡았었다.
최씨의 주선으로 모자와 오버코트가 준비되고, 우리는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집을 마련
해준 윌버트 최씨는 그집을 팔 예정이었다. 한편 최씨는 우리를 위해 비행기를 예약하고,
교포들이 몰려와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대통령은 출발 예정인 사흘전 부터 보행난으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게 되었다. 섭섭해 하는 교포들에게 환국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우리 모두 서울가서 만나세'하고 어린애 처럼 좋아했다.
3월17일 출발할 날이 밝자 간단한 아침 식사를 끝낸 대통령은 외출복을 입고 쇼파에
앉았다. 최백렬씨가 왔으며, 우리 영사관에서 전화 연락이 있은 후 9시 반에 김세원
총영사가 내방하였다. 대통령 곁에는 최백렬씨와 인수가 앉아 있었고, 내 앞에는 윌버트
최씨와 김 총영사가 자리를 잡았다. 의아해 하며 바라보는 대통령에게 최백렬씨가 먼저
조용히 말했다.
'이박사님, 우리나라 위해 일 많이 하시고, 늘 우리나라 잘되기를 원하고 계신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김세원 총영사가 말씀드리는 것을 바다와 같이 넓으신
마음으로 알아 들으시고 나라 위해 한번 더 결심하셔야겠습니다' 그리고 김 총영사가
정부의 귀국 만류 권고를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대통령은 어느덧 눈이 충혈이 되어갔다. 이에 '누가 정부 일을
하든지 정말 잘해 가기를 바라오'하는 것이 대통령의 대답이요 부탁의 전부였다.
그런뒤 휠체어에 몸을 기댄 후 다시는 혼자서 일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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