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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나태주) / 너무 고마워요 (이정록)

clara40 2023. 9. 28. 10:53
 
 

<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

나태주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 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에요.

 

이 여자는 젊어서 부터 병과 더불어

약과 더불어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고요.

장롱에 비싸고 좋은 옷도

여러 벌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는 여자이지요.

자기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 밭 한 귀퉁이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숙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돈을 아끼느라 꽤나

먼 시장 길도 걸어 다니고

싸구려 미장원에만 골라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나태주 (시인)

   나태주 시인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2007년 교장으로

43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치신 분이다.

​  정년 퇴임을 앞두고 췌장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고 큰 병원에

갔더니, '수술 불가, 치유 불가'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영정 사진

까지 준비했을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위급한 상황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겠다.

​  그러나 기도의 힘인지, 아내의 간호 덕분인지, 기적적으로

병이 호전되고 완쾌되어서, 다행히도 우리 곁에 지금도 건재해

계신 분이다.

​  그 생사를 오가는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을 지극히 병 간호하는

아내에의 안타까운 마음을 풀어낸 詩가 바로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시에 대한 답가로 아내의 입장을 대변해서 쓴 글이

바로 다음에 소개하는 '너무 고마워요'이다.

***** ***** ***** *****

~ 위 詩에 대한 答詩 형태로 지은 詩 ~

 

< 너무 고마워요 >

    이정록 (시인)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나님,

이제는 저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나님,

저 남자는 젊어서 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 온 남자예요.

시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에요.

 

한 여자 남편으로 토방처럼 낮게,

한 집의 가장으로 배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 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나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 ***** ***** *****

< 부 부 >

  나태주

부부간 금슬이 좋지 않았다.

오래 앙숙이었다.

그런데 정작 부인이 세상을 뜨자,

그는 쉽게 일어서지를 못했다.

 

겨우 몸을 추스렸을 때

그는 사람들의 세상 속으로 가지 않고,

채소밭으로 나가

채소들을 들여다 보며 살았다.

생전 부인이 기르던 채소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 ***** *****

< 부 부 >

  나태주

오래고도 가늘은 외길이었다

 

어렵게, 어렵게 만나 자주

다투고, 울고, 화해하고,

더러는 웃기도 하다가

어렵게 늙어 버렸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