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ㆍ생활/좋은글

[좋은글] 미국서 온 실버타운의 90대 노인부부

clara40 2023. 11. 30. 11:10
 

 

  내가 묵는 실버타운 이층에는 일년 전부터 아흔 한살의

노인 부부가 살고 있다. 미국에서 오십년을 살다가 고국에서

죽고 싶어 돌아왔다고 한다.

  부부는 수평선에서 붉게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이면 동해

바닷가의 파크 골프장 녹색 잔디밭에 나가 걷는다. 점심

시간이 되면, 공동 식당에서 주는 나물 반찬이 많은 시골

밥상을 맛있게 먹는다. 저녁 어둠이 내리면, 노부부는 각자

책을 읽고 노래도 함께 한다. 아직도 시력이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그 부부는 내가 쓴 소설과 수필집을 빌려 가

매일 몇 시간씩 다 읽었다고 했다. 고마운 독자이기도 하다.

  실버타운의 온천탕에서 본 그 노인은 구십대인데도 아직도

허리가 꼿꼿하고 몸매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나는 그 노부부는

‘무엇으로 사는지’ 알고 싶었다. 맑게 잘 살아온 노인은 그

자체가 진리 덩어리라는 생각이다.

  높은 강대(講臺)에서 성경이나 서양 신학자의 말을 인용

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성직자의 말은 어쩐지 패션

모델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 안의 진리는 빛이 나는 인공보석

같다고나 할까. 더러 부처를 배경으로 높은 단(壇)에서 주장자를

들고 알 듯 모를 듯 애매모호한 말을 하는 승려를 화면에서

보기도 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고매한 깨달음을 말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동화 ‘발가벗은 임금님’의 옷을 설명하는 직공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수준이 낮거나 인격이 뒤틀려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여하튼 나는 단 위에서 세상을 가르치려 하는 존재보다는 자신의

체험을 나누려고 하는 고백자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실버타운의 이층에 사는 얼굴이 맑은 구십대 노인들의 삶의

얘기 듣고 싶었다. 어제 저녁 그 노부부를 나의 소형차에 모시고,

북평시장 근처의 식당으로 가 돌솥밥을 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평소에는 말이 없는 부부였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편이었다. 부인이 내게는 마음이 조금 열렸는지 이런 말을

했다.

“미국의 실버타운에 있다가 한국의 실버타운으로 왔어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미국에서는 ‘헬로우~’ 하면서 사무적으로

대하는 직원 사이에서 뭔가 주눅이 들어있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직원들이 ‘아버님, 어머님' 이라고 부르면서 어른 대접을

해주는 걸 보고, 고향이 얼마나 좋은가를 실감했어요.”

  옆에 있던 인생 백년을 바라보는 남편이 말했다.

“나이를 먹은 나에게는 이제 내일이 없어요. 오늘 이 시간뿐이에요.

인생의 밤이 오는 이 나이면 이제 쉬어도 하나님이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젊어서 일할 때는 바닷가 하늘이 별이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건지 몰랐어요. 잔디밭을 걸으면서, 바닷가를 산책

하면서, 매일 바다 색깔이 바뀌는 걸 봐요. 정말 노년이 행복해요.

미국에서 오십년 생활보다 고국에 돌아와서의 일 년이 삶의 밀도가

더 농밀한 것 같아요.”

  나는 노인에게서 살아 숨 쉬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진리를 배운다.

겸손한 마음으로 노인의 말을 받아 들이려고 한다. 진리란 단순하다.

순간순간을 마치 선물 받은 아이처럼 기쁘게 사는 것이다. 바다, 하얀

파도, 구름, 별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지구별에 와서 그런 것들을 감상

해야 하는 것이다.

  그 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어제밤 유튜브에서 강연을 들었는데, 여러 단계의 천국을 말하고

있더라구요.” 그 부부는 이미 한발은 이승에, 다른 한 발은 저 세상

쪽으로 딛고 있으면서 살피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인 노인이 말했다.

“자기가 죽어보지 않고 어떻게 천국을 말할 수 있을까? 자신도

모르는 걸 말하는 거잖아?” 노인의 말이 현실적이었다. 모르는

세계를 가본 듯 말하는 사람들이 탐탁치 않은 것 같았다.

  부인이 또 이런 말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니까 차디찬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나라가 가난하고 힘들 때 미국으로 도망가서 잘 먹고 잘

살다가 늙어서는 잘 차린 상에 숟가락을 슬쩍 올려놓듯이 복지

혜택을 공짜로 보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거예요.”

말은 조심스럽게 하지만, 노부부는 내면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남편인 노인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경기고등학교를 다니다가 6.25 전쟁 때 학도병으로 끌려

갔어요. 열 아홉 살이었죠. 바로 전투에 투입됐어요. 다행히 죽지

않고 현지에서 장교로 임관되어, 전쟁이 끝날 무렵 육군 중위로

제대했어요. 원호처에서는 나를 전쟁영웅이라고 하면서 매년 미국

으로 돈을 보내 줬어요. 이만하면 노년에 돌아와 살 자격이 있는 게

아닙니까?”

  노인의 얼굴에는 이 사회의 냉대에 대한 섭섭함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노인의 다음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우리가 늙어서 한국에 덕을 보러 왔다고 하는데 그렇지는 않아요.

내가 미국에 갈 때 한국에서는 오백불 이상은 가지고 갈 수 없었어요.

백불짜리 다섯장을 가지고 미국에 도착해서 온갖 노동을 하면서

그곳에서 돈 벌고 살았습니다. 그때 미국으로 간 교포들은 다 비슷

해요. 그 사람들이 지금 노인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오는데, 대개는

천만불 이상을 국내로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오백불을 가지고

떠나 천만불을 벌어 그 돈을 한국으로 가지고 와서 쓰겠다고 하면

애국자 아닌가요? 그런데 왜 미워하는 건가요?”

일부 사람들이 그 시대의 상황이나 그들의 입장을 모른 채 편견을

가지고 가볍게 말했을 것이다. 노부부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위로해

었다.

  6.25 전쟁은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전설같이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노인 부부는 살아있는 생생한 역사 자체였다. 또 삶의

진리를 담은 도서관이기도 했다. 나는 그 노인이 고백하는 체험을

받아 기억의 서랍에 차곡차곡 넣었다.

  성경 속 빌라도는 ‘진리란 무엇인가?’ 라고 건성으로 물었다.

감옥의 낮은 옥지기는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진리가

무엇이냐’고 바울에게 절실하게 물었다. 진리는 그렇게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찾아도 될 것 같았다.

  노인을 모시고 돌아오는 검은 해변에서는 파도 소리만 은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출처]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