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6일은 남편 리승만 박사의113회 생신 날이다. 남편은 황해도
평산군 마산면 능안골에서 한학자이셨던 아버님 이경선공과 당시 여자로는
드물게 학문을 익히고, 이씨 가문에 시집오셨던 어머님 김해 김씨 사이에서
1875년 3월 26일에 태어났다.
이 해는 고종 12년으로서 일본 군함 운양호가 강화도 앞 바다에 침입하여
포격과 약탈로서 우리나라를 유린하던 해였다. 대통령이 태어나기 전에는
위로 딸이 둘,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은 얼마후에 마마로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에 후손이 없는데다가 어머님은 자꾸 나이가 드시니 걱정이 많았
었다. 그런데 어느날 밤 어머님이 큰 용이 하늘에서 날아와 당신 가슴에 뛰어
드는 꿈을 꾸고나서 아들이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님은 남편의 아명을 승룡
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어렸을 때 생일이 돌아 오면,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 있는 미타사나
북한산 꼭대기에 있는 문수사라는 절을 찾아사거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그
당시 한국 여성들이 그랫듯이 불교 신자였던 시어머님은 생일 날이 되면, 그
험한 산길을 어린 아들과 함께 걸어 올라가서 생일 불공을 드렸던 것이다.
감옥 생활 일곱 해를 통해 기독교 신자가 되었지만, 남편은 어린 시절 어머님을
따라 절을 찾아 다녔던 즐거운 추억을 얘기하곤 했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 돌아온 대통령이 생신을 맞았을 때 문수사에서는 튀각을
보내 왔었고, 옥수동의 미타사에서는 나이 많은 여승이 누룽지를 보내온 적이
있었다. 치아가 좋았던 대통령은 누룽지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경무대에서
요리사 양 노인은 가끔 대통령의 간식으로 누룽지를 써비스하여 대통령을
기쁘게 해 주었다. 80세가 넘은 후에도 그 딱딱한 누룽지를 맛있게 드는
대통령의 치아는 음식 솜씨 좋으셨던 어머님이 담근 동치미와 김치를 먹고
자란 덕분이라고 대통령은 늘 자랑했다. 소금에 절인 김치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한국인의 치아는 세계 어느나라 사람의 치아보다도 충치가 없고 튼튼
하다는 것이었다.
하야 후 하와이에서 요양할 때 의사가 김치는 짜기 때문에 고혈압에 해롭다고
해서 김치를 조금씩 드렸더니, 남편은 나에게 '김치가 건강에 나쁠게 뭐람.
나같은 한국인은 김치를 못 먹으면 혈압이 더 오른단 말이야'하고 투정을 했다.
경무대에서 대통령은 어려서 먹던 오디, 머루, 다래, 칡뿌리, 마, 메뚜기 볶음
같은 음식을 가끔 찾기도 했다.
대통령은 옛날 고향에서 먹던 된장떡과 비지 찌개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정성껏 만들어 드리면, '우리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그 맛이 아니야'하면서도
맛있게 들었다. 무엇 보다도 어린 시절 대통령을 가장 즐겁게 해 주던 간식은
어머니가 바느질 하시며 화로속에 인두를 꽂으신채 구어 주신 군밤이었다.
삯바느질 까지 하셨던 어머님은 직접 어린 아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쳐서 이미
여섯살 때 남편은 천자를 모두 외웠다고 한다. 그당시 얼마나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지 부모님은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가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바로 그해에 천연두가 돌아서 남편도 여섯살 때 마마를 앓았다. 마마를
앓고난 끝에 눈이 안보여서 부모님은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진고개에 있던 외국인
의사의 치료를 받아 나았다고 한다. 그 당시 외국 사람이라면 무조건 불신하던 시절
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처음에는 외국인 의사에게 가는 것을 몹시 꺼렸으나, 워낙
6대 독자의 눈병이 큰 걱정이어서 할 수 없이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남편은 하녀의 등에 업혀 병원으로 들어가 처음으로 소독냄새를 맡고 얼굴을 찡그
리며 '왜내 난다 가자'고 졸랐다고 한다. 이것은 남편이 난생 처음으로 맡아본 신
문명의 냄새였다. 의사는 남편의 눈에 물약 몇 방울을 떨어뜨리며, '사흘이면 나을
테니 염려말라'고 장담했다. 의사의 말대로 3일간 눈에 약을 넣고도 별 효험이 없는
것 같았으나 나흘째 되던 생일날 아침 의사 말대로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님은 아침에 의관을 갖추고 앉으셔서 고문진보의 출사표를 읽고 계시다가,
'아버지, 자리굽이 보여요'하는 아들의 말을 들으시고, 깜짝놀라 '정말로 보이느냐?'
하시며 책상 위의 먹을 집어들고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니 '먹'이라고 똑똑히
대답했다. 부엌에서 생일 상을 보고있던 어머니를 향해 '승룡이가 눈이 보인다오'
하고 큰 소리로 알리셨다. 어머니도 반가워서 얼결에 신발을 벗어들고 '이게 뭐냐?'고
물으니 '어머니 신발'이라고 대답하자 너무 기뻐 아들을 얼싸안고 우셨다. 너무나
기뻐서 아침먹는 것 조차 잊으시고, 달걀 두 꾸러미를 감사의 뜻으로 전고개 의사
에게 보내셨다. 그런데 아드님에게 더 필요하다고 돌려 보내와서 그것으로 전을
부치고 하여 이웃 사람들을 청해 조그만 생일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남편은 해방 후 우리나라에 돌아 왔을때, 맨 먼저 일가분들에게 '옛날 혜랑 벼슬을
지내셨던 이호선씨의 후손이 조치원에 살고 있다'고 당시의 양녕 대군파 도유사였던
친척 이병규씨가 말씀드리자 무척 기뻐하며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해서 이병규
씨가 대통령 생신날 호선씨의 손자가 되는 회수씨의 부인 연안 김씨를 데리고 경무대로
찾아왔었다. 병규씨가 '이 아주머니가 혜량 대부의 손부입니다.'하고 소개했다. 그랬더니
대통령은 퍽 반가와하며 '아~, 그래 안죽고 돌아오니 다 만나보는구먼,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는데..., 그래 애들은 뭘하고 있어'하고 묻고는 '내가 여섯살 먹어서 눈을 못봤어.
그때 아버지께서는 자주 혜량댁에 가셨는데, 그 어른의 주선으로 병원에 가서 내 눈이
괜찮았어. 그때 눈이 멀었더라면 오늘의 내가 없을것이 아니오'하며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가난한 때라도 어머님께서는 아들의 생일 날 미역국과 흰 쌀밥을 해주셨고,
수수 팥잔지와 튀각을 해 주셨다고 한다. 그렇지만 해외에서 수학하며 독립 운동 할
때는 생신날 굶은 적도 있었다. 그당시 남편은 배가 몹시 고프면 뉴욕의 어느 중국
음식점에서 일하고 고학하며 독립 운동을 같이 했던 최용진씨를 찾아가 요기를 하곤
했었다. 때로는 이 분과 함께 두 그릇의 울면만 식탁 위에 놓고 생신 파티를 하며
고향집을 그리워 했다고 한다.
나와 결혼한 뒤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대통령의 생신 날에는 미역국과 흰 쌀밥을
해드렸고 물김치나 깍두기와 함께 잡채와 불고기 같은 맛있는 한국 음식을 꼭 해
드렸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생일 축하 행사를 사양하겠다고 하며, 친구나 친척들만
경무대로 초대하여 조촐한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남편은 나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내가 '기왕 축하 행사를 준비했고, 특히 축하 행사 연습을 한 어린이들을
실망시키게 된다'고 말하니, '나도 어려서 어른 생신 잔치에 가는 것이 즐거웠어.
내 생일날 어린이들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해야지'하고 승낙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생신날 중에서 나에게 가장 잊혀지지 않는 날은 부산 임시 관저
에서 맞은 1951년의 생신날이다. 대통령은 미역국과 안남미 쌀밥 외에는 단 한
가지도 더 생신 음식을 장만해서는 안된다는 엄명을 내렸다.
그 당시 많은 전재민들이 굶주리고 있었고, 날마다 처참한 부상병들이 신음하며
후송되어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생신 선물은 어떠한 경우에도 엄금하며
일체 사절한다고 했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생신 음식 조차 가져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부산 임시 관저에서 살다가 가까운 곳으로 거처를 옮겼던 양성봉
지사 부인이 인절미 한 둥구미를 가져 왔었다. 양 지사 부인이 대통령께 인절미를
선물해 온데는 사연이 있었다.
얼마전 대통령과 양 지사가 배를 타고 거제도를 비롯하여 남해안의 여러곳을 시찰차
순회했었다. 이때 양 지사는 인절미를 가지고 와서 대통령과 배안에 탄 모든 일행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어찌나 그 떡이 맛이 있었는지 한참 후에 양
지사를 부르더니 '양 지사, 아까 그 인절미 참 맛있던데, 그떡 정말 맛있어'하며 넌지시
양지사에게 남은 떡이 있으면 조금 더 내놓으라는 눈치를 보였었다. 그러나 남은 떡은
하나도 없었다. 대통령이 조금 실망하는 눈치여서 양 지사는 마음 속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신날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말라는 엄명이 있었지만,
인절미만은 대통령께 드려도 별 탈이 없을 것으로 알고 가져왔다는 것이다. 과연
대통령은 인절미를 보자 하도 맛있게 많이 들어 나는 걱정이 되어 마침내 그 인절미를
감추어 버려야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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