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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프란체스카 여사의 눈에 비친 이승만 9 - 식사땐 말 없이

clara40 2022. 2. 11. 11:37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


  대통령은 음식을 가려먹는 식성이 아니고 건강했기 때문에 보약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보약이란 허약한 체질의 소유자나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지

자기처럼 건강한 사람에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대통령은 인삼

같은 선물을 받게되면 늘 이덕제라는 어렸을 때 친구에게 보내곤 했다.
  심지어 1.4후퇴 직전의 성탄절에 대통령의 종가댁 종손이며 서당 친구였던

이병주씨가 가져온 인삼까지도 대통령은 덕제씨에게 보냈다. 그 어려운 전시에도

불구하고 병주씨는 대통령이 어려서 부터 좋아했다는 약과와 마르지 않은 인삼

세 뿌리를 보자기에 싸가지고 경무대를 찾아 왔었다. 대통령은 인삼 세뿌리를

모두 다시 종이에 싸들고, 병주씨에게 '이 인삼은 덕제를 주어야겠어'라고 말했다.
  나는 대통령을 특별히 생각해서 가져온 인삼을 덕제에게 주어야겠다는 말이

병주씨의 마음을 섭섭하게 할까봐, 대통령은 우유와 인삼이 맞지 않는 체질이라고

의사가 말했다고 설명을 했다.
  대통령이 이와같이 덕제씨에게 인삼을 보내게 된데는 그 이유가 있었다. 대통령이

해방 후 조국에 돌아왔을때 어린 시절 서당 친구로서 살아 있었던 사람은 병주씨와

덕제씨 오직 두사람 뿐이었다. 장난이 심했던 철없는 시절, 대통령은 이웃 친구 덕제와

함께 어른들의 담배 쌈지에서 담배를 몰래 집어내고 골통대를 만들어 둘이 앉아서 한

없이 빨았었다. 그러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저녁 상을 받는 자리에서

구토가 시작되어 담배 냄새가 나자, 어른들이 사정을 알게되어 호되게 매를 맞았다고

한다. 그후 대통령은 일생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일찌감치 담배 피우기를 졸업해

버린 셈이 되었다.
  일곱살 때 덕제와 함께 자다가 덕제가 대통령의 이부자리에 실례를 한적이 있는데,

대통령의 어머니는 두 개구장이 글방 도령에게 함께 키를 씌워서 소금을 얻어 오도록

종가댁의 정경 부인에게 보내어 둘이 함께 혼나기도 했었다고 한다. 해방과 함께 우리

나라에 돌아온 대통령은 덕제씨를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워 했고 오랫 동안 헤어질

줄을 몰랐다.
  그런데 건국 후 덕제씨가 경무대로 찾아와 늘그막에 사삼이나 억어 먹게 고성 군수

한자리 시켜달라고 부탁을 했으나, 대통령은 그의 청을 받아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대통령은 인삼만 보면 덕제씨에게 보냈지만, 고성 군수가 되고 싶었던 덕제씨는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몹시 섭섭해 했다고 한다. 그 후 대통령은 덕제씨의 아들을 경찰

학교에 보내 교육을 받게한 후 경찰관으로 채용했다.
  언젠가 강원도의 어느 노인이 대통령에게 산삼을 선사했을 때도 대통령은 덕제씨

에게 보낼 좋은 선물이 생겼다고 기뻐했다. 그런데 요리사 양 노인이 산삼은 참으로

귀한 것이고 예로 부터 영약으로 알려진 것이니 조금만 달여서 대통령에게 드려보자고

나에게 제안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대통령이 덕제씨에게 보내기로 하던 산삼의 한쪽을

떼어내 대추와 생강을 넣고 함께 달였다.
  그러나 인삼은 좋은 보약이지만, 체질에 맞지않으면 오히려 해롭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는 나는 그것을 대통령에게 드리기 전에 먼저 마셔보았다. 그런데 곧 눈이 충혈

되면서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게 되고 심한 두통이 났다. 그리하여 나는 이것을 대통령

에게 권하지 않기로 했다.
  그 후 사람의 체질을 분류하여 한약을 짓는다는 이른바 사상 의학설에 의하면 대통령은

태음인이고 나는 소양인이 되어, 우리 두 사람이 모두 인삼이 맞지 않는 체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나는 대통령에게 보약을 권하는 일이 일체 없었다. 산삼이

얼마나 몸에 좋은지는 모르지만, 덕제씨는 대통령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보약을 들지

않았던 대통령이 더 건강하게 장수했다.
  한국 전쟁 중 전투가 치열했던 동해안을 시찰하고 장병들을 위문하러 갔을 때 설악산

장수대에서 대통령이 묵게되었는데, 백인엽 장군과 오덕준 장군에게 '산에서 내려오는

물속에 진짜 산삼 녹용이 다 녹아 있다'고 하면서 '산삼이 좋다면 나같은 늙은이 보다는

싸우는 장병들이 먹어야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옛날 중국의 진시황이 불로초와 불사약을 구하러 우리나라로 동자들을 보냈는데, 하도

경치가 아름답고 살기가 좋아서 모두가 돌아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대통령은 어렸을때

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그 불로초가 한국의 인삼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나는 인삼을 아무에게나 권해서는 안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불로초를 든 적도 없이 80세가 넘어도 젊은이 처럼 건강했던 대통령은 남달리

부지런하고 낙천적인 성품이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때라도 한국인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사람들을 웃기고 위로해 주는 여유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의 건강 장수의 비결은 허욕없이 편안한 마음 가짐과 절도있고 규칙

적인 생활 습관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다만 한국 음식을 남달리 좋아했기 때문에 나는

대통령이 특별히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들때는 과식하는 일이 없도록 늘 옆에서 감시

해야만 했다. 과식보다는 소식이 정신을 더 맑게하며 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거북이나

학, 사슴 등과 같은 십장생 동물들은 한결같이 소식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대통령은 식사할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어렸을때 부터

대통령은 식사할때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고 한다.

특히 대통령의 어머니는 식사할때 말을 하면 복이 달아난다고 일러 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6대 독자인 아들에게 '콩 한 조각도 사이좋게 친구들과 나누어 먹을 줄 알아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하시며 '나누어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은 돼지와 다름없다'고

가르치셨다고 대통령은 말했다.
  가족들과 함께 단란한 대화를 즐기면서 식사를 해온 나는 말없이 식사만 하는

대통령을 보고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될 때가 많았다.그러나 대통령은 독립 운동

하던 시절이나 대통령 재임시나 한결 같이 자신의 독특한 한국식 식사 매너를 바꾸지

않았다. 그리하여 특히 외국 귀빈을 경무대로 초대하여 식사 대접을 할 경우 식사

도중엔 말을 하지않는 대통령이 오해 받는 일이 없도록 나는 늘 각별한 신경을 써야만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유명한 한국식 식사 매너를 이미 알고 오는 외국 귀빈들이 많아서

별 문제는 없었다. 경무대에서 외국 귀빈을 접대 할때는 콩나물 잡채와 닭찜을 주로

했었는데, 닭찜에는 꼭 죽순을 넣었다. 이 밖에도 밤, 잣, 은행, 표고, 대추 등 한국의

맛과 멋을 살린 이 닭고기 요리를 우리는 미화된 닭고기 즉 영어로 표현해서 'Glorified

Chicken'이라고 불렀다. 콩나물 잡채와 닭찜은 늘 외국인들의 호평을 받았다. 비싼

쇠고기는 특별한 경우에만 썼고, 불고기ㆍ신선로구절판 같은 특별 메뉴도 가끔 선

보였었다.
  90평생을 그토록 정력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남편의 건강은 아들에 대한 정성이

남달리 지극하셨던 어머님 덕택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병장수의 첫째 조건인 모유를

먹으며 대통령은 어머니품에서 자랐다. 어머니 젖이야 말로 하나님이 주신 가장

훌륭한 건강식이기 때문에 영국의 여왕도 자녀들을 모유로 기른다고 한다. 또한 7년

간의 옥중 생활이 갖가지 괴질 전염병과 혹독한 고문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정의의 하나님을 믿고 조국을 구하겠다는 남편의 강한 투지와 집념 그리고 고통받는

동포에 대한 사랑으로 언제나 자신의 건강을 돌보거나 생각할 여유가 없는 실정이었다.

늘 자신의 건강보다도 나의 건강을 염려해주는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 대통령은 도토리묵이나 메밀묵, 콩가루 넣은 주먹밥,

칼국수, 동치미, 냉면같은 어머님의 정성이 담긴 한국 음식들을 먹으며 힘껏 뛰어놀며

자랐다.
  부산 임시 관저로 피난을 갔을때 대통령은 정원의 돌틈에 나있는 반풍나물을 보고,

'양 지사, 저 반풍나물은 몸에 아주 좋은 것이야. 저 귀한 나물은 양 지사 아들이 먹어야 해'

하면서 삽으로 떠내서 양성봉 지사의 새 거처로 옮기게 하였다. 양 지사 부인이 반풍

나물을 대통령에게 가지고 올 때마다 대통령은 '나같은 늙은이 보다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먼저 먹이셔야 한다'고 당부하곤 했다.
  대통령은 미국에서 독립 운동할때 9살 먹은 외 아들 태산이를 전염병으로 잃고 슬픔과

한을 늘 가슴 속에 깊이 지니고 살아왔기 때문에 양 지사의 외 아들에게도 남달리 마음을

쓰는 것 같았다.